새해 첫날, 해돋이 구경 후, 여덟시에 길을 나서서 오르는 장산은 여느날 보다 조용하다. 조용한 만큼 겨울 풍경은 더욱 수채화처럼 투명하고, 물소리는 세밀한 붓끝처럼 겨울 나무의 풍경에 초록빛을 덧칠한다.
코끝과 볼을 스치는 바람은 바늘처럼 따갑지만, 앙상한 나뭇가지의 새순들은, 두꺼운 살피를 뚫고 힘차게 솟구친다. 장산을 오르는 산행길은 무려 30여개. 길이 많은 만큼 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많은 팻말이 잃은 길을 곧 되찾게 해 준다.
고적한 산길을 혼자 오르다 보면, 산, 산, 산…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산은 우리말은 아니다. 그러나 '뫼'라는 우리 말보다 왠지 산의 형태를 그려 놓은 이 상형문자에 낳은 산(産)의 음을 취했다는 의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장산은 곳곳이 돌탑이 유난히 많다. 그리고 이 돌탑들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돌탑 두 개는, 탑을 세운 이의 공든 기가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고 돌탑 이상의 신성한 신령이 깃든 것처럼 이 앞에 오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장안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탑은 장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천지신명께 영원한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탑이라고 적혀져 있다. 대부분 산은 신격화 되어 있고, 산에 사는 신은 수호신적 상징성으로, 신신령으로 불리는데, 노인이나 호랑이로 인식되어 왔다.
호랑이는 산신령의 심부름군이나 탈 것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고, 전국 명산에는 이와 같은 산 할미와 산 신령에 대한, 제의식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제의들은, 국가나 공동체의 수호자로서 산을 신령하게 상징해 왔다.
장산에는 돌과 물이 흔하다. 산은 취락 형성의 터전이다. 장산은 그 옛날 장산국의 성터이기도 하다. 해운대의 근거가 되는 장산에는 재와 고개가 많다. 산의 일부인 이 재와 고개들은 그 옛날 물물교환과 인적 왕래의 흔적처럼 군데 군데 산길을 열고 있다.
한때 군사기지로 이용되었던 장산. 산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게 하는 지형으로 그 산을 지켜주는 골이 깊고 넓다. 장산 '양운폭포'는 해운대의 팔경이지만, 이 장산의 중턱에 자리한 '장원폭포'과 '양운폭포'를 혼돈하는 사람이 많다. 장원폭포는 거친 남성미를 풍긴다면, 양운폭포는 여성적이다. 이 폭포의 소에는 용이 되다만 '이무기'가 살았다는 전설과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했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져 내려온다.
장산은 큰 목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농장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군데 군데 검은 염소를 발견하면, 정말 이곳이 사람이 사는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은 인간에게 자연귀의 사상을 낳게 한 곳. 멋진 산수화 속에 들어와서 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검은 염소 떼들은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고, 파란 겨울 하늘은 더욱 파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산들은 염소처럼 뛰놀았고, 언덕들은 양처럼 뛰었다"는 시편의 말씀처럼 장산은 염소뿐만 아니라 청솔모 다람쥐 산토끼 등 많은 동물이 뛰어노는 산. 장산을 즐겨 오르다보니 장산의 산행길이 머릿 속에 나만의 산행 지도를 그린다.
해운대 신시가지의 대천공원에서 산림욕장을 지나 그리고 양운폭포를 지나, 체육공원과 모정원을 거쳐 장산마을 갈림길에서 '장원폭포'를 보고 구곡산 정상에 올랐다. 구곡산 정산에 오르니 이제껏 걸어왔던 장산의 높은 봉우리가 보이고, 부산 시내가 다 보인다. 좌우가 탁 트인 시선에 닿는 바다는 정말 그림처럼 아름답다.
늘 보는 그림인데 싫증이 나지 않는 물소리가 그린 겨울 세한도, 그 한장을 달력처럼 걸어두고, 올 한 해는 정말 물소리처럼 맑게 살아야 겠다 !
2008.01.02 13:0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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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가 그린 세한도 한장, 벽에 걸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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