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우향앞으로 갈 처지인가?

프랑스나 스웨덴과 한국은 처지가 다르다

등록 2008.01.02 13:52수정 2008.01.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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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일이다. 새해 들어 첫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임기를 곧 마무리할 것이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준비를 하고 있는 새로운 해이다.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신문기사가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다.

 

새해를 맞으며 매일경제 신문은 1면탑에 "새로 깨어나는 프랑스, 스웨덴"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말하자면 복지병이 만연한 늙은 유럽이 점차 우파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성장을 추구하는 젊은 유럽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추구하는 개혁이 그렇고, 중도우파가 집권해서 대대적으로 복지제도를 손질하는 스웨덴이 그렇다. 덴마크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분명 유럽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변화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국민이 이미 성장우선론을 대선에서 선택한 것처럼 대세는 성장추구로 기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유럽의 복지국가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큼 확실한 복지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정부의 보조금을 늘리는 것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훨씬 많은 사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성장률을 높여야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성장을 하면 안하는 것에 비하여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성장을 지향하는 정책이 최선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여러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 전제들을 모두 생략해버리고 주장을 해서는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말 것이다. 첫째는 잠재성장률보다 현재의 성장률이 현격히 낮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다. 둘째는 경제적 버블현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성장을 해야 한다. 성장이 버블없이 가능해지려면 잠재성장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한다. 셋째 그렇게 성장을 추구했을 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전제들이 우리경제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도 우리는 잠재성장률이 넘는 성장을 하고 있다. 사실상 버블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토목공사로 엄청난 버블과 부작용을 감수하고 성장을 하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성장은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내수기반이 취약한 탓에 수출에 의존하지만 대기업이나 첨단산업의 성장이 고용을 유발하는 계수는 과거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는 지금 유럽의 선진국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 나설 형편이 아닌 것 같다. 유럽의 선진국이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단계가 있다. 극단적 자본주의가 민중의 삶을 매우 피폐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반하여 민중들은 연대하여 자본에 저항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 선택을 통하여 복지를 꾸준히 확충해온 것이다. 그러한 복지가 과도해서 효율성을 해치는 데까지 발전하였다. 실업률이 높고, 경제가 활력을 상실하면서 저성장의 시기를 오랫동안 경험하였다. 이제 그들은 과도한 복지를 축소하고 경제에 활력을 되찾으려 노력 중이다.

 

반면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초기발전 단계를 막 지나왔다. 그것도 짧은 기간 동안 매우 압축적으로 성장하여 많은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형편이다. 그들이 거쳤던 복지국가의 단계를 우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처지이다. 또 그들이 많이 우향우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우리보다는 훨씬 좌측에 서 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경험한 극단적 자본주의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이 좌중간에 서있고, 우리는 우측의 끝에 서 있는 것이다. 함께 우향앞으로 갈 수가 없다. 중요한 발달의 단계를 생략하고 가면 모두 우측 끝의 낭떨어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경제의 상황을 구조적으로 살펴보자. 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에 달한다. 경제성장이 거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수시장이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다. 대외변수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바로 내수시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국민소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내수시장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출하는 복지예산이 국민의 가처분 소득으로 시장에서 소비되면 그 만큼의 GDP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정부지출이 현저히 낮다.

 

특히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타율에 의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강타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적어도 700만이 언제 짤릴지 모르고, 임금도 낮은 비정규직이다. 집값의 고공행진과 사교육비의 부담으로 교육의 기회마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다. 이렇게 해서는 내수시장을 살릴 방법이 없다. 성장을 하려면 수출에 더욱 의존하거나, 버블을 조장하는 것 밖에 없다.

 

내수가 적절한 비중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는 결코 성장도 가능하지 않고, 좋은 일자리도 만들 수가 없다. 내수를 살리려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직접 늘려주는 길 밖에 없다. 그것은 정부의 복지예산 지출이나 보조금의 증액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유럽을 따라서 우향우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이미 복지과다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과거 했던 것처럼 과도한 복지을 도입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그들이 복지를 축소하는 것일 뿐 폐기처분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작도 안 된 것을 그들보다 앞서서 폐기처분할 이유가 없다. 과도한 복지는 경제에 독이 되지만 적절한 복지는 경제에 활력과 균형을 가져온다. 그들은 과도해서 문제인 것을 우리는 처음부터 피해야 한다고 주장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우향우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는 것은 좋지만 사실관계를 호도하여 그들이 거친 과정조차 생략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해선 안 될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수준의 복지 확충이다. 그것이 경제구조를 건전하게 만들고 장기적인 성장의 기초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스웨덴의 우파정권이 우향앞으로 간다고 우리도 무작정 우측 벼랑으로 떨어질 필요가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1.02 13:52ⓒ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선성장론 #유럽의 경제개혁 #늙은 유럽 #복지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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