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철다리. 이 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슬비와 예슬이가 벌교읍내를 배경으로 놓인 철다리를 건너고 있다.
이돈삼
남도땅 보성 벌교읍에 가면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철다리(鐵橋)가 하나 있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이 다리는 1970년대까지 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 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해방과 함께 벌교로 돌아와서는 용감하게 일본놈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한 염상구. 그는 장터거리 주먹패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땅벌이라는 깡패 왕초의 제의에 희한한 결투를 벌인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지 담력을 겨루어 여기서 지는 자는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하고.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 <태백산맥> 1권 188쪽
해방 직후 암울했던 시대 민중의 고난사를 적나라하게 그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는 철다리만 나오는 게 아니다. 소설을 전개해 가는 ‘현부자네 집’과 밀물 때 올라온 바닷물이 피바다로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소화다리(부용교)’, 무지개형의 돌다리인 ‘횡갯다리(홍교)’, 기품 있는 고택 ‘김범우의 집’도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도방죽, 남도여관, 진트재, 소화의 집, 회정리 교회, 벌교역, 금융조합, 율어해방구 등 소설 속 무대는 벌교와 주변지역에 숱하게 많다. 소설의 주요 공간이 벌교인 때문이다. 벌교의 역사가 소설을 낳은 셈이다. 지금 소설 속의 생생한 무대와 현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훌륭한 문화자원이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