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에는 소설 <태백산맥>이 살아있다

철다리, 소화다리, 현부자네 집, 중도방죽 등 소설 속 생생한 현장 고스란히

등록 2008.01.09 11:23수정 2008.01.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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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철다리. 이 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슬비와 예슬이가 벌교읍내를 배경으로 놓인 철다리를 건너고 있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철다리. 이 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슬비와 예슬이가 벌교읍내를 배경으로 놓인 철다리를 건너고 있다.이돈삼

남도땅 보성 벌교읍에 가면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철다리(鐵橋)가 하나 있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인 이 다리는 1970년대까지 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 다리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준다.

‘해방과 함께 벌교로 돌아와서는 용감하게 일본놈을 처치한 독립투사로 변신한 염상구. 그는 장터거리 주먹패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땅벌이라는 깡패 왕초의 제의에 희한한 결투를 벌인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다가 바다로 뛰어내리는지 담력을 겨루어 여기서 지는 자는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하고.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 “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 <태백산맥> 1권 188쪽


해방 직후 암울했던 시대 민중의 고난사를 적나라하게 그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는 철다리만 나오는 게 아니다. 소설을 전개해 가는 ‘현부자네 집’과 밀물 때 올라온 바닷물이 피바다로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소화다리(부용교)’, 무지개형의 돌다리인 ‘횡갯다리(홍교)’, 기품 있는 고택 ‘김범우의 집’도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도방죽, 남도여관, 진트재, 소화의 집, 회정리 교회, 벌교역, 금융조합, 율어해방구 등 소설 속 무대는 벌교와 주변지역에 숱하게 많다. 소설의 주요 공간이 벌교인 때문이다. 벌교의 역사가 소설을 낳은 셈이다. 지금 소설 속의 생생한 무대와 현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훌륭한 문화자원이 돼 있다.

 현부자네 집. 소설 <태백산맥>을 전개해 가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현부자네 집. 소설 <태백산맥>을 전개해 가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이돈삼

 소화다리. 일명 부용교라고도 한다. 철다리, 횡갯다리(홍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소화다리. 일명 부용교라고도 한다. 철다리, 횡갯다리(홍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였다.이돈삼

 홍교. 횡갯다리라고도 한다.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홍교. 횡갯다리라고도 한다.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이돈삼

사실 <태백산맥>은 60여 년 전의 옛날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우리네 삶이기에…. 따라서 <태백산맥>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그들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하여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을 찾아가 작품의 배경을 더듬어 보는 것은 매력적인 여행이 된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을 맞아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보성군 벌교읍으로 가보자. 소설 속의 주무대로 나왔던 여러 장소들이 소설과 똑같은 곳에 실존하고 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작품 구절을 떠올리며 그 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범우, 염상진, 염상구, 심재모, 서민영, 외서댁, 하판석, 소화 등의 꿈과 절망, 사랑과 투쟁, 죽음 등 가파른 인생사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소설 속의 분위기도 온몸으로 느껴지면서 그것을 읽을 때의 감동이 다시 한번 살아난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 조정래가 몸소 체험했던 식민과 분단시대의 아픔, 빈부 격차, 계급 갈등 등 우리 민족의 서글픈 근·현대사도 조명된다.

 금융조합.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공간이 된 벌교에는 소설 속의 생생한 무대와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벌교의 역사가 소설을 낳은 셈이다.
금융조합.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공간이 된 벌교에는 소설 속의 생생한 무대와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벌교의 역사가 소설을 낳은 셈이다.이돈삼

 보성 벌교에 가면 소설의 작가 조정래가 몸소 체험했던 식민과 분단시대의 아픔, 빈부 격차, 계급 갈등 등 우리 민족의 서글픈 근·현대사가 조명된다. 소설 속에 언급된 꼬막도 맛볼 수 있다. 사진은 소설의 무대가 된 현부자네 집(왼쪽)과 해질 무렵 꼬막을 채취하는 아낙(오른쪽)의 모습이다.
보성 벌교에 가면 소설의 작가 조정래가 몸소 체험했던 식민과 분단시대의 아픔, 빈부 격차, 계급 갈등 등 우리 민족의 서글픈 근·현대사가 조명된다. 소설 속에 언급된 꼬막도 맛볼 수 있다. 사진은 소설의 무대가 된 현부자네 집(왼쪽)과 해질 무렵 꼬막을 채취하는 아낙(오른쪽)의 모습이다.이돈삼

졸깃하고 알큰한 꼬막맛도 '일품'


<태백산맥> 함께 ‘벌교’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꼬막이다. 이것은 소설 속에도 언급이 돼 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이 꼬막은 남도에서 고급 음식에 속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사상에 꼭 올라야 한다. 주머니 사정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꼬막 없이 제사를 지내지는 않는다. 애·경사에서도 꼬막이 없으면 음식을 다 먹고도 뭔가 허전한 것이 남도 사람들이다.

꼬막은 청정해역인 벌교 일대 여자만에서 가장 많이 난다. 여기서 나는 참꼬막은 알이 굵고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육질을 손으로 만지면 오므라들 정도로 싱싱해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꼬막에는 헤모글로빈과 단백질, 무기질, 칼슘, 비타민 등이 많이 함유돼 있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허약한 체질의 개선과 빈혈 예방, 어린이 성장 발육에 좋다. 여성이나 노약자들의 보양식품으로도 최고다. 술안주로도 으뜸이다. 고단백이면서 저지방 알칼리성 비타민과 칼슘 등의 함유량이 많기 때문이다. 음주로 인한 해독 효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자만 일대에서는 해마다 700여 어가에서 연간 3000톤의 꼬막을 생산,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에 4000원씩 10㎏ 한 상자에 4만원 안팎에 팔린다. 지역경제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꼬막 덕분에 벌교사람들은 오랜 세월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도회지로 보내 가르쳐 온 것이다.

 벌교 꼬막.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이 술안주로 제격이다.
벌교 꼬막.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이 술안주로 제격이다.이돈삼

 벌교사람들은 뻘배를 밀고 다니며 채취한 꼬막으로 오랜 세월동안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도회지로 보내 가르쳐 왔다.
벌교사람들은 뻘배를 밀고 다니며 채취한 꼬막으로 오랜 세월동안 부모를 모시고, 자식들을 도회지로 보내 가르쳐 왔다.이돈삼

#태백산맥 #현부잣집 #꼬막 #보성 벌교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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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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