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사신 한상질을 명나라에 보내 조선과 화령(和寧) 중 하나를 국호로 선정해달라고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조선과 화령 중 하나를 골라달라는 말은 사실상 조선을 국호로 선정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명나라가 이성계의 고향인 화령을 국호로 인정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성계 집단은 과거의 많은 국호 중에서 왜 하필이면 조선을 선택했을까? 그들이 고구려·백제·신라 같은 국호를 회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경국전> 서두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경국전>은 정도전 등이 만든 법전으로서 조선왕조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경국전> 서두의 국호 부분에서는 과거에 존재했던 국호들 중에서 조선·신라·백제·고구려를 순서대로 열거한 뒤에, 어떤 국호는 되고 어떤 국호들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서 고구려를 맨 뒤에 설명한 것은, 조선왕조가 극복한 대상이 고려이기 때문에 고려와 연결되는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폄하하기 위한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려왕조의 무능을 목격한 당시로서는 고려나 고구려의 이미지가 좋았을 리도 없을 것이다.
먼저, <조선경국전>은 고구려·백제·신라 국호가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들(고구려·백제·신라, 인용자 주)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칙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명호를 세우고 서로 침략하고 빼앗았으니 비록 국호를 칭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 국호를 채택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중국과 무관하게 세워진 나라일 뿐만 아니라 그 국호들 역시 중국의 칙명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고구려·백제·신라의 자주적 이미지 때문에 그런 국호들을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나라에 대해 사대주의를 표방한 조선의 국제적 처지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신라’ 하면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사대주의를 떠올리지만, 조선 초기의 역성혁명세력은 그로부터 자주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점이다. 신라에 대한 인식에서 오늘날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둘째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침략하고 빼앗는 등 분열적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영토는 비록 삼국시대만 못해도 한민족의 유일·통일 왕조가 된 조선이 그런 분열시대의 국호를 취할 수는 없다고 인식한 것이다.
현대 한국인들이 고구려 국호로부터 웅대한 ‘강대국’을 연상하고, 또 북한 쪽에서는 고구려와 연결되는 고려를 ‘통일’ 코리아의 국호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 초기의 신진세력은 고구려로부터 그런 이미지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였다시피, 고구려의 계승자인 고려가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본 당시로서는 고구려·고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조선 초기의 이성계 집단은 ‘고구려·백제·신라 국호는 자주적인 동시에 분열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런 국호를 기피했다.
다음으로, <조선경국전>은 조선 국호를 채택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만 기자만이 주나라 무왕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候)가 되었다. 지금 중국의 천자는 고명(誥命)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조선이라는 칭호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久遠)하다. 이 이름을 근본으로 하여 받들고 하늘을 좇아서 백성들을 기르면 길이 후손들이 번창할지어다.’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한 것과 같이 명나라 천자가 전하에게 명하였으니 이름이 바로잡히고 말도 순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역성혁명세력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조선 국호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기자조선이 주나라 무왕의 책봉을 받았다는 점(이를 부정하는 반대견해가 유력)이고,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승인했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연계성을 표현하는 데에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성혁명세력은 조선 국호가 중국에 대한 사대정신을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고구려·백제·신라 국호는 분열적이라서 채택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역성혁명세력이 조선 국호만큼은 분열성의 이미지를 띠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군조선이든지 기자조선이든지 혹은 위만조선이든지 간에, 조선이란 국호를 취한 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항쟁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역성혁명세력은 조선이라는 국호가 통일국가의 명칭으로서 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계 집단은 조선 국호가 ‘사대성’과 ‘통일성’의 이미지를 띠고 있기에 그 시대로서는 가장 적합한 국호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조선’이란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과 상반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조선’ 하면 북쪽을 떠올리고 그 반대개념으로 남쪽의 ‘한국’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대에는 조선 국호가 일정 정도 ‘분열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조선’이란 표현에서 조선왕조의 ‘무능’을 연상하기도 한다.
한편, 어떤 한국인들은 ‘조선’에서 ‘자주성’을 연상하기도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갖고 있는 북한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나 북미관계의 양상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동일한 국호를 놓고 조선 초기와 현대의 시각차가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경국전>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고구려·백제·신라 및 조선 국호에 대한 조선 초기와 현대의 시각에서 상당한 ‘세대차’를 엿볼 수 있다. 이는 과거의 국호에 대한 인식이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대한민국 국호는 미래에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까?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강대국이 될지, 약소국이 될지, 통일국이 될지, 분열국이 될지, 자주국이 될지, 사대국이 될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아직 60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대한민국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느냐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