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물
조도춘
지난 주말(6일) 지리산 청학동을 찾았다. 산골짜기에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두툼한 잠바를 입은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방학을 맞은 개구쟁들에게 방학은 더 이상 휴식의 시간이 아닌 분주한 계절이다. 언제부터 알려졌는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아이들은 엄한 훈장선생님 앞에서 인성과 예절을 배우느라 땀흘린다.
서당 옆 응달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서당 정심시간. 신발장에는 아이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층층이 쌓여 있고 훈장 선생님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서당 주변을 청소한다.
가을수확을 하지 않은 감나무에 감은 이미 홍시가 된지 오래. 불그스레한 빛깔을 잃어 약간 검은색으로 변하여가고 있다. 까치밥으로 남겨두기는 너무 많은 홍시. 까치집의 평화를 배려한 감나무 주인의 후한 인심의 배려인 듯하다. 조금 만 더 있으면 자연스럽게 곶감이 될 것 같다.
오르막길을 올라 모퉁이 돌아서자 산기슭에서 학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지리산 자락에 숨어있는 청학동은 잎을 다 떨어뜨린 나목의 숲속에 있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곳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선경(地上仙境)이라고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처럼 천하 명승지라고 일컫는 곳이라고 한다.
‘청학하처재(靑鶴何處在)’ ‘청학은 그 어디에 있을까’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돌탑이 보인다. 천하태평을 꿈꾸어온 사람들이 찾고 있는 이상향인 모양이다. 청학동은 옛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과 토속상품을 파는 가게가 더 많이 들어선 곳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옛 전설이 숨어 살아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모친은 이 곳에 산지가 몇 년이나 되었소.”
“47년.”
올해 나이을 묻자 할머니는 모른다고 답한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곱게 늙으신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넘어가는 짧은 햇볕을 쬐고 있다. 산골의 겨울 해는 빨리 진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방인들의 방문에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90평생을 이 골짜기에 의지하면서 살아온 할머니는 나이도 잃은 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