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을 가린 버스.종이로 가렸습니다
이정근
"조사하면 다 나오니 찍지 마세요"관광객들이 입경수속을 하는 사이 관광버스는 앞뒤 번호판을 가리고 붉은 깃발을 꽂았다. 입경수속을 마치고 북측출입사무소를 휘둘러보았다. 건물은 새로 지어 깔끔했다. 검색대의 컴퓨터는 삼성제품이었고 대형 에어컨은 센추리 제품이었다. 입북 수속이 끝나자 버스 1대당 3명의 북측요원이 탑승했다. 관광총국 안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2명이 앞자리에 앉고 자기소개가 없는 1명은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북측 순찰차가 맨 앞에 달리고 그 다음에 관광버스 5대. 그 사이에 순찰차 1대 그리고 버스 7대, 마지막에 25인승 마이크로버스가 뒤를 따르고 구급차로 개조한 스타렉스가 뒤를 쫓는 행렬이었다. 북측 순찰차는 현대자동차 갤로퍼였고 보안요원을 태우고 뒤따르는 마이크로버스 역시 현대차였다. 물자 부족의 여파일까? 갤로퍼 뒷문에 달고 다녀야 하는 스페어 타이어가 똑같이 없었다.
달리는 버스에서 북측 안내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개성을 찾아주신 남측 관람객 여러분, 개성에 오시니까 좋지요?”
“네.”
“이동하는 버스에서의 사진촬영과 주민지의 사진촬영은 안됩니다. 관람지 촬영은 맘껏 찍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네.”
“우리의 눈을 속이고 사진을 찍어도 여러분들이 가실 때 북측 사무소에서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찍지 말라는 것은 안 찍어야겠지요?”
“네.”
창밖을 내다보며 수군대던 관광객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모습은 재잘거리는 아동들로 소란스럽던 유치원 교실에 원장선생님이 들어와 근엄하게 한마디 던진 것과 흡사했다.
남쪽 관광객들은 순한 양이 되었다. 여기가 내가 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한국 땅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났다. 일이 잘못되어 한국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관광객들로 하여금 착한 어린이가 되게 하였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개성 관광객들의 휴대금지 품목에 필름카메라와 핸드폰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를. 디카는 재생모드에서 찍은 영상을 즉시 검색할 수 있지만 필름카메라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는 얼마가지 않아 개성공업단지를 지나갔다. 야간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이 우리가 북측 출입사무소를 통과하듯이 통근버스에서 내려 공단출입사무소를 통과하여 버스에 다시 오르고 있었다. 남쪽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근로자들의 차림새가 조금은 세련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