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 황제의 칙사'라고는 하지만, 일개 환관이 횡포를 부린다. 분개하는 양녕대군과는 달리, 태종 이방원은 이를 감수한다. <대왕 세종>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대처를 능숙함으로 미화했지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봉 정도전의 '요동 정벌'이 현실화됐다면, 조선왕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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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기에,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무조건 친미정책만 고수한 것은 아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모토로 미국 내의 대북강경파와의 알력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요구는 실현됐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도 큰 틀에서 보면 미국식 투기자본들이 환영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색이었다. "반미하면 어떠냐",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책임지지 못할 발언을 한 것이다.
'양위 파동'과 '대연정''용의 눈물'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아마도,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라는 평에도 굴하지 않고 용으로서 '인간의 눈물'을 감수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을 진행해 왕권을 강화했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용의 눈물>과 <대왕 세종>에서 잘 드러나듯이, 태종 이방원은 끄떡하면 양위 파동을 벌였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를 관철시킨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재미있는 장면이다. 태종 이방원의 '양위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은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연정은 조금 그… 바로 내 전략이 보통은 옳았다라고 하는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입니다. 내 딴엔 건곤일척의 카드라고 던졌는데, 그게 흑카드가 됐어요.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할 줄 알았어요, 상대방이. 내가 그때 내다본 것은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일사불란하고 우리쪽은 갑론을박이 돼 버렸어요(웃음). 거꾸로 총알이 그냥 우리한테 날라오고. 수류탄을 (적을 향해) 던졌는데 데굴데굴 굴러 와 가지고 막 우리 진영에서 터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아주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류탄은 함부로 던지지 말아야죠(웃음)." <오마이뉴스> 2007년 10월 10일자 기사 <"연정 제안하면 한나라 당황할 줄 알았다 수류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려">, 오연호 대표기자가 시도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발언이다. 태종 이방원이 '양위 파동'을 일으킨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곧,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과 자멸을 시도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야당이었음에도 기득권 세력과의 밀착을 통해 여전한 권세를 누리는 한나라당의 자멸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야당임에도 여전한 권세를 누리는 정당'이라는 것을 감안했어야 했다. '대연정'해봐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그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계산을 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수류탄은 데굴데굴 굴러와 열린우리당에서 터진 것"이다.
반면에 태종 이방원은 '양위 파동' 뒤에 반드시 희생자를 남겼다. '양위 파동' 당시, 매부 무서운 것 모르고 날뛰던 처남들이 '양위 파동' 때마다 매부의 진의를 모르고 웃고 다녔다. 결국 그들은 그를 이유로 귀양을 갔다가 곧 목숨을 잃었다. 왕조 국가에서 왕권과의 가까움을 매개로 왕권을 능가할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외척'이다.
새파란 이복동생이 세자로 책봉되면서, 외척과 그에 결탁한 신하(정도전)가 어떻게 왕권을 위협하는지를 지켜본 태종 이방원이다. '외척 말살'은 태종 이방원이 체험을 통해 깨달은 왕권 강화의 숙명적 과정이다. 그래서,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줘 뒷전에 물러났음에도 군사권을 틀어쥐고 핑계거리를 잡아 사돈 집안까지 멸문에 처한 것이다. 병약한 아들의 왕권을 고려한 처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누린 집단이라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했다. 권력을 오랫동안 누렸기에, '권력'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다. 그런 프로들을 상대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수류탄'을 던졌으니, 다시 돌아와 터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