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밥에 쓱쓱 비벼먹어도 좋고 그냥 밥 한술 고기 한 점 이렇게 먹어도 좋다.
위창남
식당은 화실에서 정해주는데 밥을 먹고 나면 화실마다 있는 장부에 표시를 했고 원고료 받으면 그 장부를 보며 밥값을 계산했다. 철도 소화시킨다는 20대 초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해도 모자를 판에 몇 숟가락 뜨면 없는 백반은 늘 아쉬웠다. 공깃밥을 더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와 동료들이 받은 원고료로는 하루 두 끼를 식당에서 사먹으면 끝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우리를 포함해 근처 화실에서 밥을 먹으러 사람들이 나왔다. 말 붙이기 어려운 선배들을 빼놓고는 우리랑 나이대가 같거나 만화원고에 맡은 역할이 같으면 금세 친해졌다. 나와 친구들은 음식을 고르는데 고민하지 않아도 될 백반이었지만, 돈 많이 버는 그들은 주로 제육볶음이었다.
친구 가운데 넉살좋은 애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사는데 꽤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 그 친구로 인해 그들 자리로 가 같이 밥을 먹었다.
눈치 때문에 제육볶음을 덥석하고 집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모른 척하고 입에 넣은 고기 한 점은 얼마나 꿀맛이던지. 나와 동료들이 지나간 자리는 설거지가 필요 없을 만큼 깨끗했는데, 아마 제육볶음이 나온 접시까지 씹어서 먹으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 그렇게 했더니 앞 화실 애들이 우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빈대처럼 달라붙어 자신들 음식을 뺏어먹는 우리가 부담스러웠는지 우리를 피해 식당을 갔다. 그러나 우리 레이더를 마냥 피할 수 없었다. 가난은 자존심을 세게 만들기도 하지만 배고픔은 그걸 뛰어넘게도 한다. 우린 그들이 식당에 들어가고 난 뒤, 그러니까 제육볶음이 딱 나올 시간에 우연인 척하며 들어가 같이 앉아 밥을 먹을 만큼 조금 뻔뻔하기도 했다.
그럼 그 여유 있는 화실로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이 달라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때는 나중에 좀 더 큰 작가가 되길 원했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을 쫓아 움직이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신세 아닌 신세를 지면 고료를 받는 날 통닭에 생맥주 한잔이라도 꼭 샀다.
내 젊은 날, 사람을 치사하게 만들었던 그 제육볶음이 생각나 만들어 봤다.
일단 요리는 쉬어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요리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빼고는 복잡한 요리는 귀찮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