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가수 조덕배씨가 올레지기 서동철씨의 등에 업혀 오름을 오르고 있다.
양김진웅
예정에 없던 길까지 뽀득뽀득 밟으며 제주올레 4코스를 완주한 이들의 소망은 하나같이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였다.
'제주올레'를 걷기 위해 혼자 내려온 이들이 즉석에서 결성한 솔로클럽,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무려 3000명이 넘는다는 다음카페 걷기모임 '유유자적' 회원들, 그리고 어린 아이를 챙기고 온 아빠, 딸과 단둘이 동행을 했다는 직장 여성. 모두가 올레객이자 저마다 올레지기이다.
<딸들에게 희망을><수다가 사람 살려>의 저자인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도 딸 장희령양(엄마는 딸을 '장한희령'이라고 부른다)과 제주의 바람을 맘껏 마시고 돌아갔다. 오씨는 발달장애를 가진 둘째 딸 희령이와 날마다 한강 둔치를 6㎞씩 걷는 올레꾼이다.
제주올레에서는 예기치 않은 반가운 손님을 간혹 맞딱뜨리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첫날 올레걷기에선 '꿈에' 가수 조덕배씨가 아름다운 동행을 했다. 예정없이 들려준 '오름 위의 음악회'는 올레꾼의 감성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마치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는 가수 조덕배씨는 "서울에서는 하지 못했던 생각이 제주에 오니 비로소 든다"며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 삶을 되돌아 보게 됐다"고 말했다.
현기증 나는 바쁜 세상에서 한번쯤 '간세다리(제주어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란 뜻)'가 되어 걸어봄직한 길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현기증나는 '속도' 세상 한번쯤 '간세다리'가 되어 보게나!고3 딸 아이와 함께 원없이 길을 걸었다는 직장인 박혜경씨는 "내 몸과 마음의 쉼터, 언제든 이 곳에 가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 제주 올레를 알게 된 기쁨이 너무 크다"며 "이번 여행은 2008년 새해의 축복이고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19일 제주올레 홈페이지(
www.jejuolle.org)에 "내일부터 3박4일 제주올레를 걷겠다"고 글을 남긴 전미란씨는 "까미노 덕분에 알게 된 제주올레여서 그런지, 꼭 지금 산티아고로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며 "1·2·3코스와 마지막날 우도까지 꼭꼭 천천히 밟으면서 가슴에 담고 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제주를 찾았던 한 '간세다리' 시인은 "제주의 올레는 낮은 길"이라며 한 편의 올레시(詩)를 선사했다. '간세다리'가 되어 걷는 이들의 내딛는 걸음 걸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진정으로 여유를 갖는 '참살이'와 다름 아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 불교의 옛말이 아니더라도 제주올레 길에서의 만남은 큰 인연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간세다리'가 오늘도 '제주올레'를 찾고 또 '제주올레'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