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니 부끄러워할 것 없어"

내겐 천사같았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나다

등록 2008.01.21 12:34수정 2008.01.2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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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나이에 다시 뵙게 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중년 나이에 다시 뵙게 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우광환
중년 나이에 다시 뵙게 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 우광환

 

그날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은 특별했습니다. 기어이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동창 모임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담임을 끝으로 결혼을 하시게 되면서 교사직을 그만둔 선생님이었기에 수소문하기가 여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우리 앞에 나타나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옛날에도 천사같이 예쁘셨지만 지금도 고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은 중년이 되어버린 30여 년 전 제자들을 아직도 거의 기억하셨습니다.

 

그다지 교사직을 오래 하시지 않았고, 더구나 우리가 마지막 제자들이었기에 더욱 잊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의 이름을 단번에 기억해내시는 선생님을 보고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파란 하늘처럼 맑았던 선생님의 미소


30여 년 전 농촌에서는 어느 아이나 대개 코를 흘리고 다니던 시절입니다. 학교를 입학했을 때 절반 가량은 가방 없이 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다니던 가난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선생님에겐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학교를 낯설어 하는 우리들을 상냥한 웃음으로 달래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미소는 파란 초가을 하늘처럼 늘 맑았습니다.

 

유치원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던 우리들은 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받아쓰기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항상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길 좋아하셨습니다. 처음 맞춤법을 잘 이해 못하던 기자도 선생님의 격려에 힘을 얻고 자신감을 가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선생님이었기에 언젠가 동창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선생님 근황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생님 연락처를 아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일은 추억의 저편으로 묻혀버리는 듯 했습니다. 혹시 돌아가신 것은 아닌지 걱정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선생님을 찾아냈고, 그렇게 모신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어리광을 부려봤습니다.

 

운동회 날 우리 눈엔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천사셨다
운동회 날우리 눈엔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천사셨다우광환
▲ 운동회 날 우리 눈엔 선생님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천사셨다 ⓒ 우광환


끔찍할 뻔한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승화시켜 주신 선생님


사실 내겐 선생님께 특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 무얼 잘 못 먹었는지 배탈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이른 봄 쌀쌀한 날씨였지만 아침 첫 시간부터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기운이 쏙 빠져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양호실에 데려다가 눕혀주셨는데, 거기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을 먹었어도 계속 불편했던 속이 끓더니 기어이 속옷에 설사를 지렸습니다. 그러나 낯선 양호선생님에게 그런 사실을 도저히 말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가 더 지끈거리는 와중에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쉬는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마를 짚어보고는 수심 어린 얼굴을 하실 때, 겨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고백하면서 엉덩이 쪽을 가리켰습니다.

 

양호선생님이 콧노래를 부르며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기에 끝까지 눈치 채지 못하기를 바랐습니다. 그 순간 우리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로 유지되기를 혼자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사태를 파악하신 선생님이 얼른 커튼을 닫더니 내 귀에 소곤거리셨습니다.

 

“원래 배 아프면 다 이러는 거야. 네 잘못이 아니니 부끄러워할 것 없어.”

 

그 순간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천사였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화장실로 안고 가셔서 일을 마저 치르게 하셨고, 따뜻한 물을 떠다가 엉덩이까지 닦아주셨으며, 내 속옷을 빨아 교무실 난로에 말려서 입혀주셨습니다.

 

 선생님 앞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고 싶은 제자들
선생님 앞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고 싶은 제자들우광환
선생님 앞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고 싶은 제자들 ⓒ 우광환

 

그 날 있었던 선생님과 나만의 비밀은 끝까지 우리 둘 외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날, 나를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지금도 선생님의 따뜻한 등에서 자꾸만 내 코를 자극하던 향기로운 냄새가 잊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열이 뜨겁게 오르는 너를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 네가 낫기만 한다면야 그 때 무슨 일은 못했겠니.”

 

선생님이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그제야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된 친구들이 깔깔 거리면서도 선생님과 둘만의 소중한 추억을 부러워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뵙게 된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시간이었습니다.

2008.01.21 12:34ⓒ 2008 OhmyNews
#학교 때 담임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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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장편소설 (족장 세르멕, 상, 하 전 두권, 새움출판사)의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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