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싱글시대 9

백수 생활 1년간

등록 2008.01.25 17:56수정 2008.01.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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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아십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한 여자에게 확 끌리게 됩니다. 종로2가의 J서적에서 책을 사는데, 책값을 계산해 주던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입니다. 고운 피부, 크고 맑은 눈이 내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여자의 이름표를 봐두었습니다. 설현정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자 앞에 나타나서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하고 제의하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큰맘을 먹고 J서적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설현정씨 바꿔 주세요.”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가 설현정인데요.”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문욱이라고 합니다.”
“예.”
“제가 서점에서 보았는데 설현정씨가 너무 미인이라서 마음이 끌렸습니다.”
“…”

“저는 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설가 지망이세요?”
“예, 문학청년이지요.”
“아, 그러시군요.”
“제가 커피 한잔 사고 싶은데 괜찮으신지요?”
“어머, 너무 뜻밖이네요?”
“나오실 수 있죠?”
“점심식사 끝나고 잠시 시간을 낼 수는 있어요.”
나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럼 몇 시가 좋겠습니까?”
“12시 30분이요.”
“그럼 서점 근처에 있는 H다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예.”

 

나는 설현정이 서점에 근무하는 만큼 작가 분위기 나는 남자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작가 분위기가 최대한 나도록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나폴레옹 양주병을 사서 주머니에 넣어두었고, 한강 담배를 사두었습니다. 그녀가 나오면 줄담배를 피우다가 양주를 한 모금 마실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나에게서 작가다운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설현정씨. 제가 문욱입니다.”
“안녕하세요?”
“저쪽 자리에 앉죠.”
자리에 앉은 뒤 나는 한강 담배를 꺼내어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담뱃불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식이었습니다.

 

“뭐 드려요?”
다방 여종업원이 와서 물었습니다.
“뭐 드시겠어요?”
내가 심현정에게 물었습니다.
“커피 주세요.“
“나도 커피 주세요.”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에 커피가 왔습니다.
“J서적 참 좋은 곳인데… 좋은 직장에 근무하십니다.”
“예. 좋은 직장이에요.”
“책과 함께 있으니까 좋죠?”
“예. 책을 좋아하니까 꼭 맞아요.”
“나도 직장엘 다녔었습니다.”
“어디요?”
“나는 S전기에 인사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그만두었죠.”
“나이도 많지 않은데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셨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만두었습니다. 내 명함을 하나 드리죠.”
나는 ‘장래의 위대한 작가 문욱’이라고 인쇄된 명함을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후훗! 명함이 재밌네요.”
나는 그녀가 잘 이끌려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습작을 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큰 결심을 한 겁니다.”
“그래도 너무 아까운 직장을 놓으셨네요. 다시 그만한 직장에 들어가려면 쉽지 않을 텐데….”
“아깝기는 하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작가가 꼭 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저는 꼭 된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
“나를 따라갈 문학도는 없으니까요.”
“좀 교만하시군요.”
“작가는 모름지기 교만해야 한다고 김유정이 말했습니다. 김유정 아시죠?”
“예.”

 

그때쯤 나는 나폴레옹 양주병을 꺼내어 병째 한 모금 마셨습니다.
“어머! 술을 병째 가지고 다니세요?”
“작가의 모습답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허허허.”
“좀 엉뚱하네요. 그런 게 작가의 모습인가요?”
설현정이 거부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뒤로 물러서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을 아십니까?”
“예. <날개>를 쓴 작가시죠.”
“그분은 서른도 못 넘기고 요절을 했습니다.”
나는 나폴레옹 양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말을 이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술을 마시다가 빨리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남겨놓고 죽을 겁니다.”
“왜 요절할 생각을 하세요?”
“하하하. 멋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나니 설현정이 내 앞에 없었습니다. 문 쪽을 바라보니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극심한 굴욕감에 휩싸였습니다.


"저런 못된!"

나는 낮게 부르짖었습니다.
작가다워 보이게 하려는 나의 언행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첫 만남에서 나에게 등을 돌렸고, 나는 여자의 눈에 들지 못하는 불쌍한 백수건달 신세를 극복해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8.01.25 17:56ⓒ 2008 OhmyNews
#싱글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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