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쿨 전경오른쪽의 본관 건물 1층에는 사무실과 세미나실, 숙소, 세면장 등이 있고 2층은 여성용 숙소와 동영상 및 컴퓨터 실습장이 있습니다. 강당이었던 왼쪽 건물은 강의실과 독서실로 이용하고요.권우성
▲ 오마이스쿨 전경 오른쪽의 본관 건물 1층에는 사무실과 세미나실, 숙소, 세면장 등이 있고 2층은 여성용 숙소와 동영상 및 컴퓨터 실습장이 있습니다. 강당이었던 왼쪽 건물은 강의실과 독서실로 이용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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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의 일들을 얘기하려니까, 방학 동안 실컷 놀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일기를 몰아 쓰느라 진땀을 빼던 철부지 시절이 떠오르네요. 멋쩍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겠기에 기억력을 되살려 흔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지난 16일부터 일주일 일정의 서울 방문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17일은 방북 교육을 받는 날이고, 18~20일까지는 강화도에 있는 오마이스쿨에서 시민기자 기초강좌, 그리고 24일에는 북한 개성 방문이 예정돼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 방문은 작년 가을에 이미 계획이 잡혀 있는 데다 통일부가 폐지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했지만, 제1회 시민기자 기초강좌 참가는 “비용은 내가 대줄 것이니 다녀오세요”라며 집사람이 허락(?)한 날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생활 이후 지금까지 단체숙식을 해가며 강의를 받아본 적도 없고,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2박3일을 함께 보낸다는 게 큰 매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가는 소풍과 수학여행을 앞두고도 잠자리를 설쳤는데 오죽했겠습니까.
전직 수간호사였던 집사람이 작년 여름 갑자기 취직이 되어, 주변 정리가 웬만큼 될 때까지는 떨어져 있기로 약속하고, 혼자서 7개월째 밥을 해먹으며 외롭게 지내오던 터라 가슴이 더욱 콩닥거렸을 것입니다.
손꼽아 기다리던 여정이 시작되다
집에서 출발하던 16일, 기차를 타려고 구포역으로 가는 도로 주변에 활짝 핀 빨간 동백은 ‘잘 다녀오라’며 배웅하는 듯했고, 청잣빛 하늘과 맑은 날씨는 24일의 북한 개성 방문을 축하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서야 평택에 도착, 코흘리개 시절 동네 교회의 주일학교에 함께 다니면서 친구처럼 지내온 막내 누님 집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매형과 대화도 제대로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다음날 서울 수유리에 있는 통일교육원을 오가려면 지하철과 버스를 6시간 가까이 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시행되는 방북교육은 17일 오후 1시 30분부터 5시까지 통일교육원 교육관에서 무사히 마쳤습니다. 교육자가 300여명쯤 되어 보였는데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야 함에도 통일부를 폐지한다는 발표 때문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더군요.
시민기자 기초강좌 첫날인 18일 아침은 전날의 피곤 때문인지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나 샤워를 한 뒤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아점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수색역에 도착하니 5시 40분이더군요.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 장소와 출발시각을 확인하고 공사장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근처 식당에서 된장찌개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허기를 달래고 식당을 나오니까 거리의 네온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수색역 2번 출구 앞에 서 있는 버스의 엔진 소리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일요일마다 버스를 대절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던 70년대 초의 추억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더군요.
강좌가 끝나는 날까지 ‘말을 아낄 것’을 다짐하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제 또래로 보이는 분이 사탕을 주며 말을 걸어와 인사를 나누다 보니 같은 조(趙)씨더군요.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저보다 5년이나 위더라고요. ‘대단하시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강좌가 끝날 때까지 짝꿍을 하자는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솟더군요.
지하철을 잘 못 탔다는 어느 분 때문에 30분쯤 늦게 출발했지만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더라고요. 호기심과 반가움 속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는 사이에 강화도의 오마이스쿨에 도착했습니다.
작년 12월 초 개인적으로 방문했을 때 기회가 있으면 꼭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어서인지 운동장과 건물들이 친근감 있게 느껴지더군요. 버스에서 내려 김유진 과장님이 정해주는 방에 짐을 풀자 겨울밤에 빠져서는 안 될 고구마가 나왔습니다.
오연호 대표 기자의 맛깔스런 강의
배정해준 침실에서 겨울철 최고의 별미이자 다이어트 식품인 고구마를 먹으며 잠시 대화를 나누고 강당에 모여 오연호 대표 기자의 첫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고구마를 드시라며 친절을 베풀어주신 김 과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 대표의 강의는 ‘나는 왜 시민기자가 되려는가’라는 주제로 이루어질 참석자들의 대화를 앞당겨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제가 오버를 했습니다. 참석자 한 분이 “남편의 권유로 참석했다”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저도 집사람이 보내줘서 참석했습니다”라고 자랑하며 푼수처럼 끼어든 것입니다. 갑자기 머쓱해지면서 몇 시간 전의 다짐도 버티지 못하는 제 자신이 미워지더군요.
한 시간여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오 대표의 본격적인 강의가 있었습니다. 나무꾼처럼 지게를 진 자신의 12살 때 모습의 사진을 보여주며, 생나무와 잉걸로 분류되는 기사 명칭도 어린 시절의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힘들고 고달팠던 시절 얘기와 아들이 인터넷 신문사 사장인데 아버지는 컴퓨터가 없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말>지 기자를 하면서 차별받던 일들과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인터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솔직함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오 대표는 “여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중학교 2학년 때와 유인물을 쓰던 대학교 시절의 ‘절실함’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라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쓸 때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 독자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알아야 할 것, 기사를 쓸 때는 당당해야하고 잘못된 지적에 대해서는 겸손할 것, 그리고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창간 정신을 중심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두 분이 참석을 했는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밤 10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한 그분들의 글쓰기에 대한 열의와 도전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밤이 깊어지자 예정시간이 넘었다며 피곤하지 않으냐는 오 대표의 질문에 “괜찮습니다! 좋아요!”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겨울밤의 별미인 고구마와 식혜보다 맛깔스럽고 시원한 오 대표기자의 강의는 예정시간인 11시를 훨씬 넘겨서야 끝났습니다. 친교의 시간은 강당 옆에서 타고 있는 모닥불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지난 18일-20일까지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제1기 시민기자 기초강좌 참석 후기를 3회에 걸쳐 올리려고 합니다.
2008.01.28 11:3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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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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