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역사팩션] 제국과 인간 9회

105인사건과 조선총독 데라우치

등록 2008.01.28 11:10수정 2008.01.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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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만으로 대처하는 무장 투쟁에 한계를 느낀 신규식은 조국의 독립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독서와 사색에 밤낮으로 몰두했다. 그는 낮에는 하루 8시간 이상 독서를 했고, 밤에는 대여섯 시간 정도 집필과 사색에 전념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선각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념과 방략을 메모하기도 했다. 마치 도를 찾는 수도자처럼 그는 용맹정진을 거듭했다. 이제 그도 30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신규식은 우선적으로 나라가 망한 원인과 근인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는 조선인에게는 잘 잊는 병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른바 선망증(善忘症)이었다. 그런데 선망증은 하늘이 준 양심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데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조선인은 나라를 유지하는 데 긴요한 4가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는 조선인이 잊은 4가지를 기록했다. 첫째로 잊은 것은 선조의 종법이었고 둘째는 선조의 공렬이며 셋째는 국사(國史)이고 넷째는 국치였다. 그러자 조선은 법치가 문란해졌고 원기가 쇠약해졌으며 지식이 트이지 못했고 외세에 아첨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이 다시 살려면 이 선망증부터 고쳐야 했다. 잊어버린 4가지를 기억해야 자력갱생을 이룰 수가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이었다. 요컨대 나라를 빼앗긴 시대의 교육이란 혁명의 준비이자 실천이었다.

그러나 총독부 치하의 교육은 심각하게 탄압받고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교원에게까지 제복을 입게 하고 착검을 지시했다. 그러니 교육을 하더라도 암암리에 하거나 국외에서 해야 했다. 더구나 혁명을 도모하는 일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주한 일본군 헌병대 사령관을 총독부 경무총장에 겸직 임명했다. 연쇄적으로 각 도의 헌병대장은 해당 도의 경무부장을 겸하게 되었다. 그들의 제1 임무는 조선 독립운동의 뿌리를 뽑아 근원을 없애는 데에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안중근을 서둘러 총살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적 성향을 띠는 조선인의 결사체라면 무조건 적발하고 처단했다. 그들은 불온하게 보이는 사람이 발견되면 일도 벌이기 전에 잡아들였다. 그들에게 고문당하는 조선인들의 비명과 신음, 그리고 그 가족들의 한숨과 탄식은 금수강산을 잿물로 물들여갔다.


제국주의 일본은 모든 집회를 금지했고 한글 신문을 폐간했으며 학원 사찰을 실시했다. 또한 그들은 회사령을 강행하여 민족 자본을 억압했으며 조선인의 광산과 어장을 탈취했다. 그들이 만든 철도와 도로와 항만과 화폐는 모두 식민지 조선을 갈취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이 실행한 교통과 통신과 금융과 재정은 전부 식민지 예속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방책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두려움이란 죄의 무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조선 총독 데라우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여 들었다. 조선인들의 저항은 현저히 침체되어 있었다. 그러면 마음이 더 편해지리라 생각하고는, 가을쯤에는 개마고원으로 사냥을 가려 했는데 그는 왠지 내키지 않아 취소해 버린 상태였다. 


총독 부임 후 그는 대체로 식욕이 떨어진 편이었는데, 어느 때는 갑자기 폭식을 해서 소화 불량에 걸리기가 일쑤였다.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불면증이란 것을 얻게 되어 핏발선 눈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부족한 수면 때문인지 책상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조는 모습이 비서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총독은 저항인들의 씨를 말리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간주해 버렸다. 아직도 불온한 자들이 있어 그들이 꾸밀지 모르는 흉계에 자신이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던 것이었다. 경호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자기라고 이토 통감 짝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거였다. 게다가 안중근이라는 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러시아에 살고 있는 이상 그런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개연성이 있었다.

사실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불안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안법, 신문지법 등의 악법은 조선인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계몽 운동까지 지하로 숨어들게 만들었다. 탄압으로 와해된 애국단체의 회원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안창호와 신채호와 박은식 등은 종래의 입헌군주제를 자유공화체제로 전환하여 새로운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처음 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이런 결사조차도 허용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점조직의 비밀 결사체를 만들고 신민회라고 이름 붙였다.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신민회는 국민을 새롭게 만들어야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결사체였다. 서북지방의 기독교인이 압도적 다수로 참여한 신민회의 회원 수는 800명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신민회는 교육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정주에 오산학교와 평양에 대성학교와 강화에 보창학교 등을 세웠다. 그들은 강연과 출판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민족 산업 부흥에도 관심을 기울여 도자기 회사 등을 만들었다. 그들은 독립군 양성을 위하여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열었다.

그러나 애국 인사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면서 신민회는 와해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주동자 급들은 뿔뿔이 해외로 망명했고, 양기탁, 김구 등을 비롯한 국내파들이 활로를 암중모색하고 있던 차였다.

안명근은, 사촌이면서 동지이기도 했던 안중근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중근은 쾌거를 이루고 장렬히 순국했는데 반해 자신의 삶은 기회주의적인 것이라는 가책심이 그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때를 만들어 그는 데라우치를 자기 손으로 처단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으다가 황해도 신천에 사는 한 부호의 밀고로 지명 수배되었다.

한편 안명근은,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에게 성체 성사를 해주었던 빌렘 신부를 믿고 따르고 있었다. 빌렘의 상관은 뮈텔이라는 프랑스 선교사였는데, 그는 대부분 선교사들이 그러했듯이 조선의 독립 운동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토마스라는 세례명까지 있는 안중근을,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부정했으며, 안중근의 성체 성사를 해 준 빌렘 신부에게, 정치적 문제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업무 정지 처분을 내린 제국주의 선교사였다.

뮈텔은 빌렘에게, 안씨 집안의 일을 소상히 보고하라고 협박했다. 그걸 알 리 없었던 안명근은 빌렘에게 데라우치 척살 계획을 고해했는데, 놀랍게도 이것이 빌렘을 거쳐 뮈텔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뮈텔은 즉각 총독부 경무총장 아카시에게 보고하였다.

이를 통하여 가톨릭이 무엇을 챙겼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런데 당시 가톨릭은 명동 성당 토지 문제로 관청과 갈등을 빚고 있던 차였다.

총독 데라우치가, 가능한 모든 정보망과 경찰력을 동원하여 안명근 체포 작전에 나선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한편 안명근은, 데라우치가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척살하기 위해 권총을 숨기고 선천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체포되었다.

105인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데라우치는 안명근을 빌미삼아 조선 민족주의의 씨를 말리고 싶었다.

“냄새가 나는 조선인은 모두 잡아들여 안명근과 공모했다는 자백을 얻어내시오.”

총독의 서슬에 질린 관리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무분별하기 짝이 없는 검거의 회오리가 가엾은 삼천리를 할퀴었다. 무려 600명이 불법 체포되어 고문을 견뎌야 했고, 그 중 105인이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구미의 식민지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의 지식인 압살이었다.

신규식의 2층 서재에서 다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아내 정완은 울음소리가 그칠 때마다 오히려 불안해졌다. 그녀는 다시 소리가 들리면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무리 울더라도 자결보다는 나았기 때문이었다.

신규식은 독립의 활로를 놓고 궁구하다가 생각이 막히면 울었다. 그는 자신의 좁은 식견과 부족한 역량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책을 펼쳤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며 그는 딸 명호에게 말했다.
“명호야!”
“네 아버님.”

어느덧 명호는 소녀 모습이 잡혀가고 있었다.
“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
“아버님께서 알려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내자가 되어라.”

명호는 다소곳이 이마를 숙였다.
“독립운동을 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단다. 그러니 네가 먼저 많이 보고 남편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명호는 두 눈을 반짝거렸다. 정완은 다시 불안해졌다. 남편은 지난 번 자결하기 전에도 딸에게 유달리 자상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것은 남편에게 독립의 희망이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이제 이 나라는 영원히 일본에 복속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 청산을 위한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 청산을 위한 소설입니다.
#안명근 #105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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