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 지진 자국은 작품으로 남는다

슬비·예슬이랑 함께 한 낙죽(烙竹) 체험의 묘미

등록 2008.01.29 14:52수정 2008.01.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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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비와 예슬이가 대나무에 불로 지져 만든 낙죽 작품들. 대나무로 만든 안마기와 컵, 팔랑개비가 제법 그럴싸하다.
슬비와 예슬이가 대나무에 불로 지져 만든 낙죽 작품들. 대나무로 만든 안마기와 컵, 팔랑개비가 제법 그럴싸하다.이돈삼

아이들은 그리면서 놀기를 좋아한다. 만들기도 즐겨한다. 슬비와 예슬이도 틈만 나면 그리고 또 만든다. 어쩔 때는 야외에 나갔을 때 공책에다 스케치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체험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체험은 대개 그리거나 만들기 둘 중에 하나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다 한꺼번에 해볼 수 있는 체험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일요일(27일) 그리고, 만들고, 이 '두 마리 토끼'를 찾아 집을 나섰다. 낙죽체험이 그것이다. 낙죽(烙竹)은 불에 뜨겁게 달군 쇠를 이용해 대의 표면을 지져서 여러 가지 무늬나 글씨를 새기는 것을 말한다. 대를 이용한 체험 가운데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낙죽 체험을 슬비는 두 번째 해보는 것이다. 예슬이는 첫 경험이다. 체험 장소는 ‘대나무고을’로 알려진 전라남도 담양. 대나무박물관 안에 있는 죽세공예 체험교실이다. 체험은 연필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완성하는 순서로 한다.

아이들은 큰 대나무 붓통에다 낙죽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재료가 동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나무 컵을 골랐다. 대를 이용한 안마기도 들었다.

 슬비가 체험교실 바닥에 덥석 엎드려 대나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 아닌 탓인지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다.
슬비가 체험교실 바닥에 덥석 엎드려 대나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 아닌 탓인지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다.이돈삼

슬비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어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우도 그리고 너구리도 그렸다. 만화 캐릭터인 졸라맨과 양파도 그렸다. 요즘 십이지간을 외운 예슬이는 열두 가지 띠를 연상하며 동물 그림을 하나씩 그렸다. 나중엔 오리와 새까지 그려 넣었다.

“오리나 새는 십이지간에 들어가지 않는데….”
“나도 알아요. 내 맘대로 그냥 그렸어.”

쳐다보지도 않고 말대꾸를 한 예슬이는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도화지가 아닌 둥그런 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생각보다 힘든 모양이었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 이름을 새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왼 손으로 대나무컵을, 오른손으로는 인두를 들고 낙죽을 하고 있는 슬비. 그 손길에 긴장감이 흐른다.
왼 손으로 대나무컵을, 오른손으로는 인두를 들고 낙죽을 하고 있는 슬비. 그 손길에 긴장감이 흐른다.이돈삼

밑그림을 완성한 슬비가 먼저 인두를 잡았다. 유경험자인 슬비의 인두질은 거칠 것이 없었다. 허리를 세우고 반가부좌 자세로 앉은 슬비는 평소와 달리 진득했다. 인두를 세우면 선이 가늘게 그려지고, 눕히면 굵어진다는 것도 예슬이한테 가르쳐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인두를 한 곳에 오래 대고 있으면 대가 까맣게 타버린다는 것도 일러준다.

반면 예슬이는 힘에 겨운지 조심스러워했다. 왼손으로는 재료를 들고 오른손으로 인두를 들어야하는 만큼 무거운 모양이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옆에서 보고 있기에 불안하기 그지없다.


뜨거운 불을 이용해서 하는 만큼 각별히 주의하라고 여러 번 일러주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아이가 처음 글씨를 써볼 때처럼, 뒤에서 껴안고 같이 손을 움직여 인두작업을 해주었다. 그래도 금세 힘들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둘이 같이 하다보니 더 힘이 드는 것 같았다. 인두 끝부분도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휙-휙- 빗나가기 일쑤다. 어린 아이들한테 혼자만 맡기기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긴장한 탓인지 인두가 지나간 자리에 손떨림 흔적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슬이와 슬비의 낙죽체험. 예슬이의 체험은 절반 이상이 엄마와 아빠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슬비는 혼자서도 잘 했다.
예슬이와 슬비의 낙죽체험. 예슬이의 체험은 절반 이상이 엄마와 아빠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슬비는 혼자서도 잘 했다.이돈삼

그새 슬비는 컵 하나를 완성했다. 팔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쉬질 않는다. 인두질을 하는 슬비의 표정에서 흐뭇함이 묻어났다. 떨리는 손끝에선 장인의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느린 손놀림에 의해 미세한 변화들이 일더니 금세 너구리도, 곰도, 졸라맨도 생명체가 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불로 지진 자국이 작품으로 되살아나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무아지경이었다. 적어도 대의 표면에 인두를 대고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하긴 옛날 장인들이 낙죽을 할 때는 숯불 타는 소리만 정적을 깨울 뿐, 쥐 죽은 듯 고요했다고 했지 않는가.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소리만 나는 정도’라고.

두세 시간이 지났다. 슬비와 예슬이는 갖가지 그림을 새긴 대나무 안마기와 컵 하나씩을 만들어냈다. 팔랑개비 하나씩은 덤이었다. 낙죽을 하는 동안 힘든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흐뭇한 표정만 남는다.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한 뿌듯함도 묻어나는 것 같다.

 낙죽을 하는 동안 긴장감이 흘렀던 슬비와 예슬이. 체험을 끝내고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손에 든 표정에서 뿌듯함이 묻어난다.
낙죽을 하는 동안 긴장감이 흘렀던 슬비와 예슬이. 체험을 끝내고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손에 든 표정에서 뿌듯함이 묻어난다.이돈삼

덧붙이는 글 | 낙죽체험은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한국대나무박물관' 안에 있는 '죽세공예 체험교실'에서 이뤄진다. 이 체험교실에서는 낙죽 외에도 팔랑개비, 대피리, 부채, 물총, 연필통, 냄비받침대, 연 등 대를 이용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대나무박물관은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에서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낙죽체험은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한국대나무박물관' 안에 있는 '죽세공예 체험교실'에서 이뤄진다. 이 체험교실에서는 낙죽 외에도 팔랑개비, 대피리, 부채, 물총, 연필통, 냄비받침대, 연 등 대를 이용한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대나무박물관은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에서 자동차로 2∼3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낙죽체험 #담양대나무박물관 #슬비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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