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탈당을 선언하고 있는 당원들.
성하훈
"정말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나요? 민주노동당에?"
반갑게 온 지역 위원장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물었다. 종북주의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다.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소위 '자주파'였다. 10여 년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 말이다. 그때는 자주파라는 말도 없었다. NL이니 민족해방파니 했다.
물론 뭣 모르고 운동에 참여하게 될 때는 몰랐지만 1학년을 지날 때쯤 운동권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그때, 열심히 조직하고 거리에 나서는 자주파가 좌파 이론가 족보나 따지기 좋아하는 평등파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개중 북을 유독 지나치게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문제 삼진 않았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대북정책 덕에 전쟁위기설이 심각하던 때라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그때였다.
나도 10여년 전, 대학생 시절엔 소위 '자주파'였다대학을 졸업한 후, 순수하던 그 열정을 소중히 간직하고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에 이해하던 것처럼 미제와 그 앞잡이들만 때려잡으면 모든 이가 행복해지는, 그런 단순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운동가로서 살기엔 운동의 지표가 될 대안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없는 사정에 억지로 영국으로 유학길까지 올라 그렇게 5년 세월을 보냈다. 의회 민주주의 산실이라는 이들의 정치를 보면서, 복지국가라고 하는 이들의 정책을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울 수 있고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면서 우리 사회의 대안을 내어보기 위한 단초를 찾는 시간들이었다.
그랬기에 영국사회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는 없었다. 민주정부를 세웠다는 우리나라가 양극화, 고령화 등 새로운 수준의 사회문제에 직면하면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여 대안이 도출되기보단 과거 권위주의적 틀에 갇혀 미봉책만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가운데 방치된 서민들은 급증하는 사회문제를 홀로 개별적으로 감당하느라 더욱더 극심한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도 민주정치를 이해조차 못한 구태의연한 정치권은 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허무한 다툼으로 절망만 안겨주는 것을 보아왔다.
그럴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누가 무어라 해도 명백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분명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가장 근대적인 정당 구조를 갖춘 정당은 민주노동당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적 대표성을 확보하고 명확한 대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권 내 정치세력은 민주노동당밖에 없었다.
공부할수록 소중하게 다가오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