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절은 왜 맛이 안 나?"
"시간의 색깔이 배질 않아서 그래···"
- <이 집은 누구인가> 중 "이 집은 몇 시예요?" 중에서
산사로 가족여행을 자주 다닐 때 일곱 살 딸이 단청 화려하고 기왓장 반짝이는 새로 지은 절을 보고 물었던 질문이다. '시간의 색깔이 배지 않았다'는 내 설명에 어린 딸은 머리를 끄덕였었다.
이번 숭례문 참화는 정말 가슴 아프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현상이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국민적 깨달음이 있다는 사실이다. 통곡하는 국민, 눈물 글썽이는 국민, 애도하는 국민, 참회하자는 국민, 가림막을 비판하는 국민, 잔해 철거폐기를 비판하는 국민들,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 성급한 복원이 능사가 아니라는 국민···. '돈, 돈, 돈' 하는 살벌한 세태에서 숭례문이 자신을 불태워 국민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딱 세 가지만 꼽아보자.
● 시간
시간은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다. 발달된 의료기술을 돈으로 사며 노화와 죽음을 피해보고자 해도 이윽고 인간은 스러진다. 골동품처럼 만드는 짝퉁기술을 쓰더라도 오랜 풍상의 시간을 견뎌온 진품에 배어있는 시간의 색깔이 발하는 아름다움에 못 미친다. 아무리 똑같이 복원해도 원형의 가치를 따라갈 수 없다. 시간의 힘은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610살 숭례문, 이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 배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선조의 말씀은 정말 맞다. 부모님의 유품을 깨뜨려놓고 "괜찮아, 더 좋은 것 사 줄게" 하면 얼마나 더 원통한가. 아픈 마음을 후벼 파는 배려심 없는 태도, '국민성금' 운운에 국민들이 성난 이유다.
"돈 얘기 하기 전에 같이 아파 해 주세요.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예의를 잃게 만든다. 인간에 대한 예의, 상징적 의미의 중요성, 문화 가치의 중요성, 숭례문이 깨닫게 해 주셨다.
● 자연
아무리 인공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자연의 크나큰 힘 앞에 인간의 힘은 지극히 작다.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를 수는 있어도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돈으로 자연을 훼손하기는 쉬워도, 돈으로 자연의 생명계를 바꾸려들면 자연의 진노를 불러온다. 화마, 수마, 기후변화, 건강 악화, 심성의 파괴 등. 숭례문, 더 길게 보게 해 주셨다.
이 외에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말 많다. 평화, 사랑, 존경, 자존심, 자긍심, 예의, 협력, 정성, 경륜, 역사, 문화, 아름다움 등 등.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꼽을 것이라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그런데도 왜 그렇게 '돈, 돈, 돈' 하는가.
숭례문 화재 참화는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도 깨닫게 해주었다. 숭례문 참화에 대한 애도, 참회, 반성, 복원과 함께 부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도 복원되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진애 블로그 (http://jkspace.net)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08.02.15 13:0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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