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박군애씨의 어머니이고 오른쪽은 어머니 친구인 임씨 할머니
오문수
10여명이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하는 현장에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한국 사람들이었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 외로움도 달래고 정보도 교환하며 일주일의 피로를 푼다.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에 온 지 24년 됐다는 아주머니는 초창기에는 차별이 많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한국 드라마 덕택에 많이 완화됐단다.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준 노래방 신청 순위 1위는 ‘정주지 않으리’ 3위는 ‘새타령’이다.
교포3세인 히로모토는 작년 4월에 불법취업자로 잡혀가 한국으로 송환된 친구가 보고 싶다며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할아버지가 한국말 하는 걸 듣고 배웠다. 지금은 한국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한국말을 배운다”며 서툰 한국말로 ‘꿈의 대화’를 부른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에 - 에 - 에 - 에 - 에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약간 술이 됐지만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그가 보여준 공책에는 ‘밤배’ ‘노란쌰쓰 입은 사나이’, ‘목포의 눈물’ 등의 한국말 가사 밑에 깨알 같은 일어로 토를 달아둔 노트가 3권이나 된다.
내게 노트를 보여주고 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등 뒤를 보며 생각해 본다. 노랫말처럼 정말 외로움이 없을까? 서러움이 없을까? 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일본 친구들도 많이 있을 텐데, ‘소수자, 약자’인 한국 노래방에 와서 저런 노래를 배울까? 일본에 온 지 4년째이며 용접을 한다는 한 남자가 자연스럽게 하소연을 한다.
“내 엄지손가락을 보세요. 용접하다가 엄지손가락이 잘렸는데 정식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장이 매달 월급에 20만 엔씩 얹어서 치료비 조로 주지요. 보상받을 길은 없을까요?”“합법적인 자격을 갖고 있습니까?"“아니요.”“살기 힘듭니까.”“사는 데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아니 한국에 와 있는 동남아 저임금 노동자 문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지금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국을 떠나 일본에 와서 힘든 일을 하며 서로를 위안하며 사는 우리 핏줄이다. 한국에서 한국 거울만 보다가 일본 거울을 보니 그 속에 또 내가 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은 산업연수생제도, 고용허가제, 방문허가제와 영어교사 등으로 취업하거나 체류하는 외국인이 인구의 2%인 1백만 명이 넘었다(1백만 254명: 07.8.24. 법무부자료).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 경제논리가 아닌 인간존중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숙제다.
내친김에 인권문제를 연구하는 박군애씨 사무실에 들러 얘기를 듣고 소장님과 면담을 약속했다. 박씨는 재일교포 3세로 귀화를 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1월 26일에는 사무실에서 관심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인권에 관한 토론에 발제를 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했으며 재일교포의 법적지위와 처우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