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하는 퀴즈 프로에서 언제부터인지 관심사는 퀴즈가 아니라 돈이 되었다. 퀴즈 프로의 부상은 한국 사회의 변화상과 맞물려왔다. 1991년 민영방송 SBS이 출범하면서 우려되었던 점은 상업성이었다. 과연 <알뜰살림장만퀴즈>(1991년)는 전에는 보기 힘든 풍경을 연출했다.
다른 프로에서는 우승하면 주던 TV, 냉장고를 이 프로에서는 한 문제 맞히면 줬다. 몇 문제만 맞히면 한 살림을 장만했다. 1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아침 퀴즈 게임이 열렸으니 그 상품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는 곧 SBS의 시청률 효자 프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도 부상으로 상품을 주었지 돈으로 주지는 않았다. 1970~80년대 퀴즈 프로의 대명사인 <장학퀴즈>도 돈 액수가 아닌 몇 학기 장학 증서를 주었다. 돈을 직접 주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직접 돈을 주는 것에 대한 금기를 깬 프로가 나왔다. 1999년 10월 23일 MBC가 첫 방송한 생방송 <퀴즈가 좋다>다. 10단계까지 모든 문제를 맞히면 2000만원을 주었다. ‘알뜰살림장만퀴즈’가 직면했던 상업성 논란은 퇴색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IMF관리체제는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계기로 현금에 대한 암묵적인 금기를 없애주었다. ‘퀴즈가 좋다’가 인기가도를 달리던 2002년 초 배우 김정은은 “여러분~부자 되세요”라는 한 마디로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11월 10일 KBS는 <퀴즈가 좋다>에 대응하는 퀴즈 프로를 만들었다. <퀴즈 대한민국>이다. 5주 연승의 퀴즈 영웅에게는 5000만원을 주었다. 퀴즈 프로의 중심축은 <퀴즈가 좋다>에서 점차 <퀴즈 대한민국>으로 이동했고 이런 흐름은 명 진행자 임성훈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퀴즈가 좋다>는 종영되었지만 <퀴즈 대한민국>은 계속되고 있다. 그 뒤 퀴즈 프로그램에서 돈을 주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부자 신드롬과 부자학에 대한 담론이 일상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퀴즈의 힘>이나 <퀴즈쇼! 최강남녀>는 1000만원이었고, KBS <1대 100> 5000만원, <퀴즈 대한민국> 6000만원, tvN의 <신동엽의 Yes or No>는 최대 1억 원에 달하기도 했다.
부상의 크기에 따라 퀴즈 프로의 인지도도 비례했고 지금은 현금의 액수에 좌우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현금 지급의 일반화와 더불어 새 퀴즈 프로가 많이 선보이는 데도 퀴즈 프로의 시청률은 신통치 않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미국처럼 100만 달러 규모의 현금이 필요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단답형의 빤한 퀴즈로는 더는 시청자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더구나 정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넘쳐나는 시대다. 단순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성찰이 필요한 때다.
파편화한 ‘대답 기계’만 승리자로 만드는 틀은 사람이려는 이들을 여러모로 불편하게 만든다. 결국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점이 퀴즈 프로에 이미 있던 것은 아닌가. 역시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2008.02.22 13:2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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