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지나친 '맞불' 전략은 자충수

<라인업>, 지나친 소재 경쟁·중복으로 논란 유발

등록 2008.02.29 14:28수정 2008.02.2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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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맞불’ 전략은 약일까 독일까. SBS 예능프로그램 <라인업>이 최근 무리한 자충수로 시청자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라인업>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3월 1일 방송분에서는 NFL(미국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를 출연시켜 ‘꼭 한번 막아보자-하인즈 워드’편을 방영한다고 공지했다.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하인스 워드는 지난 26일 <라인업> 녹화에 참여하여 멤버들과 촬영을 마쳤다.

 

문제는 이미 지난주 방송 마지막 부분의 예고편에서 이미 인기그룹 동방신기가 출연하는 후속편을 방송하기로 예고한 상황이라는 점. <라인업>에서 사전 예고된 방영분이 갑자기 바뀐 것은 처음이 아니다.

 

<라인업>은 방송 초창기였던 지난 12월 15일 전 주 예고편을 통해 멤버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요리대결에 나서는 ‘도전 요리왕’ 편을 내보내기로 했으나, 당시 뜻하지않게 서해안 기름유출사고가 터지며 멤버들이 태안으로 찾아가 2주에 걸쳐 자원봉사를 펼치는 ‘서해안을 살리자’ 특집편을 내보냈다.

 

갑작스러운 편성변경이었지만, 당시 ‘서해안을 살리자’편이 시기적으로 적절했고 훨씬 의미있는 아이템이었던지라 시청자와 언론들은 일제히 호평을 보냈다. 또 서해안편은 이후 <라인업>이  MC간 서바이벌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는 다큐 버라이어티로 색깔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했다.

 

이후 ‘도전, 요리왕’편은 몇주간 계속 편성에서 밀려 방송되지 못하다가 한달이 넘게 흐른 지난 1월 19일에 전파를 탔다. 이미 12월에 <라인업>에서 하차했던 개그맨 이동엽이 시기적으로 훨씬 예전에 촬영했던 ‘도전 요리왕’편을 통해 한달만에 다시 프로그램에 반짝 얼굴을 비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편성 변경은 다소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방송 일정상 촬영이나 편집이 촉박한 것은 오히려 하인즈 워드 편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워드의 촬영분량을 이번주에 내보내려던 것이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과의 시청률 경쟁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

 

또한 시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하인즈 워드의 출연이 <무한도전> 따라하기가 아니냐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지난해 10월 27일 방송분에서 하인즈 워드를 섭외하여 특집편을 방송하려했으나 성사단계에서 워드의 출연이 무산되며, 정준하를 특수분장시킨 ‘준하인스 워드’편으로 대체한 바 있다.

 

일단 본의아니게 동방신기가 하인스 워드에게 밀리는 꼴이 되어버린 모양새는 게스트 본인이나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리 보기좋지 않은 게 사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스트가 중복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문제는 두 프로그램의 색깔이 너무 흡사하다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 

 

<라인업>은 시작때부터 다분히 <무한도전>을 의식하여 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방영을 거듭하며 이제 조금씩 색깔에서 차별화되고 있지만, 여러 명의 MC들이 집단으로 출연하여 구성되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적 특성과 매주 소재가 달라지는 아이템의 무형식성은, 두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동일한 포맷이다. 세부적인 스타일은 다르다고 해도, 전체적인 틀에서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두 프로그램의 스타일이 유사하다보니 게스트 섭외나 소재에서 중복되는 아이템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다. <라인업>은 최근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출연을 섭외했다가 무산됐는데, 이것이 앙리를 초빙했던 <무한도전>을 따라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얼마 전에는 두 프로그램의 담당 PD가 ‘따라하기’ 논란을 두고 언론을 통해 가벼운 신경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누가봐도 성격이 비슷한 두 프로그램을 굳이 같은 시간대에 무리하게 경쟁시켜야했는가 하는 점이다. 특정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비슷한 시간대에 유사형태의 경쟁 프로그램을 맞불 편성하는 것은 방송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SBS 측에서는 개그맨 김종국을 앞세워 동일한 형태에서 이름을 바꾼 ‘꾸러기카메라’라는 코너를 동시간대 편성하여 맞불을 놓았으나, 노골적인 경쟁 프로그램 베끼기와 몰래카메라보다 더한 가학성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오히려 혹평을 받은 바 있다.

 

<작렬 정신통일>과 <슈퍼 바이킹>의 참패를 경험한 바 있는 SBS에서 동시간대 경쟁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라인업>은 지나친 무한도전 콤플렉스에 오히려 발목이 잡히고 있는 느낌이다. ‘서해안을 살리자’편으로 반짝 주목받은 이후, <라인업>은 여전히 <무한도전>과의 경쟁에서 밀려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후발주자라는 특성상, <라인업>이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무한도전>의 ‘아류’라는 이미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프로그램이 먼저 종영하거나 편성시간대를 옮기든지, 아니면 포맷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한 이런 소모적인 논란을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소재 경쟁에 시달리는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와 제작진, 서로의 발목을 잡는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2008.02.29 14:28ⓒ 2008 OhmyNews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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