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 정조 앞에서 고개는 숙였지만 ……. <이산> 제48회 예고편.
MBC
홍국영, 화병을 앓다가 죽다정조에게 내침을 당한 뒤에 홍국영은 화병을 앓다가 1년 만인 1781년에 사망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면 화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가라앉기 마련인데, 화병을 앓았다는 것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을 쫓아낸 정조를 원망하지 않았다면, 화병을 앓다가 죽었을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는 홍국영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죽음 대신 은혜를 베푼 정조의 처분에 대해서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자신을 내친 주군이 그저 원망스러웠을 뿐이다. ‘내가 없었다면 등극도 못했을 사람이 나를 버리다니!’ 그런 독심을 품지 않았다면 화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홍국영의 심리 저변에서는 정조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니까 겉으로는 충성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정조 임금을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던 것이다.
홍국영이 그처럼 ‘강한 자신감’을 품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그의 가문 배경이나 수려한 외모 또는 탁월한 언변 혹은 좋은 머리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홍국영은 정조 임금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효의황후를 죽이려 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조 임금에게 내침을 당한 뒤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도리어 원통한 마음에 화병을 앓다가 죽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저 분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는 정조 임금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그렇게 순결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충성심은 순도가 거의 바닥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조 즉위 이후의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이산>의 이후 방영분에서 홍국영의 ‘변심’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홍국영이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조의 후궁으로 들어앉힌 원빈 홍씨의 행보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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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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