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부' 들어섰는데 붉은띠 매는 사장님들

[주장] 지금 필요한 친기업 정책은 '납품가-원자재 가격 연동제'

등록 2008.03.03 19:09수정 2008.03.03 19:44
0
 이명박 대통령이 1일 3.1절 행사를 끝낸뒤 취임 이후 첫 민생 행보로 서울 근교 중소기업인 (주)케이디파워를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일 3.1절 행사를 끝낸뒤 취임 이후 첫 민생 행보로 서울 근교 중소기업인 (주)케이디파워를 방문했다. ⓒ 청와대



지난 2월 29일,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중소기업 사장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항의농성을 하고 결의문까지 발표하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원래 그 자리는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2008년 정기총회 자리였다. 해마다 2월이면 중소기업 각 업종 협동조합들이 정기총회를 연다.

이들이 결의대회를 통해 대기업에게 요구한 것은 한마디로 ‘납품단가 현실화’였다.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 납품을 통해 매출을 올리는 상황에서 납품단가 책정 문제는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생존에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그러나 납품단가를 사실상 결정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수익실현을 위해 이를 현실화시켜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물업체, 납품중단 각오하다

주물협동조합이 주물제품 제조원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원자재인 고철과 선철 가격이 각각 190%, 121% 올랐지만 대기업에 납품하는 주물제품 가격은 20~30%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더욱이 최근 선철은 15% 고철은 68% 급격히 가격이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는 주물업체들이 총회를 농성장으로 만들 만큼 절박한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납품단가가 오르지 않으면 더 이상 공장 가동이 불가능하다." (허만형 주물조합 전무)
"이렇게 닫나 저렇게 닫나 문 닫는 것은 같습니다. 납품 중단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HM금속 대표)
"대기업들에게 제품 단가 현실화를 수차례 요구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납품단가 현실화가 관철되지 않으면 공장 가동중지, 납품 중단 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다."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

이들은 오는 3월 7일까지 대기업들이 납품가격을 현실화 해주지 않을 경우 사업자등록증 반납과 납품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주물업체들이 결의대로 납품 중단에 나설 경우 관련 산업의 타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들의 납품처는 자동차·선박 등 다양하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전체 주물업체들이 납품을 중단하면 완성차 생산이 불가능할 만큼 우리 산업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a  주요 원자재 가격 동향(출처 : 조달청)

주요 원자재 가격 동향(출처 : 조달청) ⓒ 새사연


국제적 원자재가격 인상으로 중소기업 채산성 '악화일로'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악화를 겪는 것은 비단 주물 산업만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유가와 곡물가가 폭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철광석·구리·니켈 등 원자재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8년 2월 현재 주요 원자재구입가격은 2006년 12월 말 기준으로 평균 36.5% 인상되었으며 고철 46.6%, 선철 46.9%, 형강류 48.6% 등 철강류와 골재 40.2%, 니켈 42.5%, 목재 44.0%, 구리 44.3%, 금 60.0%, 곡물 76.1% 등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국제 유동자금이 석유·곡물·광물과 같은 실물자산 투자로 이동하면서 투기적 수요가 겹친 탓이다.

이렇듯 수입광물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은 1차 원자재(석유화학·금속·비금속 원자재) 가격 상승→중간제품 가격 상승→조선·건설·자동차·전자 등 최종 수요산업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에서 원자재를 제공받아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간제품 생산 중소기업은 제품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할 수 없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2007년에 접어들면서 대기업의 수익성은 회복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3년간 영업 이익률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실정이다.

이에 따라 채무상환 능력도 급격히 저하되어, 영업이익으로 겨우 이자비용을 충당하는 수준이며, 전체의 절반 가까운 중소기업은 이마저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가운데 고질적인 내수 부진과 함께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이 62.5%로 중소기업인들의 경영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a  중소제조업 경영상 애로요인(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중소제조업 경기전망조사')

중소제조업 경영상 애로요인(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중소제조업 경기전망조사') ⓒ 새사연


원자재 가격은 폭등 대기업 납품단가는 하락

그러나 원자재가격이 폭등하는 시장 추세와는 정반대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제품 단가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08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2006년도 대비 2007년도 생산원가는 평균 13.2%가 증가했으나 납품단가는 평균 2.0% 감소하여 대기업이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 단가 인하비율이 더 커진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예년에는 평균 3%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가장 낮은 업체의 인하비율이 7%로 내려왔습니다. 우리보고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최근 대구지역에서 엔진관련 부품을 생산해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가 "단가인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한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기업의 무분별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가 가장 큰 불만일 수밖에 없다. 올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2008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납품단가 인하요구에 대한 불만이 40%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이 넘는 51.9%는 "거래단절이 우려되어 그냥 참는다"고 한다.

중소기업 중앙회가 조사한 납품단가 인하 사례

● 주물업계의 경우 주 사용 원자재인 고철가격이 2006년 대비 75.9%나 상승했음에도 납품 대기업은 납품가격 인상은 고사하고, 원가절감이라는 미명하에 납품단가 인하를 계속 요구하고 있음

● PC암거 BOX를 생산하는 ○○○의 경우 철근가격이 톤당 42만원에서 77만원으로 상승하였으나, 지난해 계약한 납품처가 제품가격 인상을 허용하지 않아 계약을 포기하는 상황임

● ○○○○의 경우 원자재인 철근 가격이 2006년말 대비 70%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달청 제3자 단가계약에 의한 납품시 제품가격 인상 미반영

● 합성수지 생산 대기업의 일방적인 원자재 가격인상 통보로 제품판매가격을 제때 반영하지 못함

'납품가-원자재 가격 연동제'야말로 친기업 정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경영난을 해결할 다양한 해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납품가-원자재 가격 연동제'이다. 이는 중소기업이 이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기도 하며 2월 29일 주물업체 사장들이 결의문을 통해 대기업에 요구한 사항이기도 하다.

연동제에는 크게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원자재 가격 사전 예고제'이다. 실제 중소기업이 제품 제조에 사용하는 시멘트나 선철·아스팔트·합성수지 등의 원자재는 대부분 대기업의 독점적인 공급체제 아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원자재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으며 그것도 원자재를 공급한 뒤에 통보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을 제대로 납품가에 반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유화원료·철강재 등 독과점적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 인상시 최소 30일 이전에 사전 통보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불공정거래 행위'로 법적 조치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a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유형(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2008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사').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유형(출처 : 중소기업중앙회 '2008년 중소기업의 대기업 납품애로 실태조사'). ⓒ 새사연



연동제의 두 번째 조건은 아파트에도 분양 원가라는 개념이 있는 것처럼, 납품원가를 '회적 합의에 기초한 공정한 기준'으로 책정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료 가격이 상승된 만큼 이를 원가와 납품단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요구다. 이는 실상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경제 민주화는 고사하고 경제 정의의 기초적인 문제다.

또한 현행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유형'에 '원자재 가격 변동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를 추가하여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중소기업 원가계산센터’와 같은 것을 설립하여 납품단가와 관련된 분쟁조정 기능을 부여하는 것도 중소기업의 요구사항이다. 그리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아예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반영을 명시하자는 것이 지난 2월 29일 주물업체의 요구사항이었다.

결국 이날 중소기업인들의 시위는 '원자재 가격 사전 예고제 법제화'와 '중소기업 원가계산 센터' 설립 등의 최소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게다가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폭등 기조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올해 내내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경영 악화 해소를 위한 정책 도입 시급

이명박 정부는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물가안정화 대책은 물론이며 중소기업들의 경영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 출총제 폐지'와 같은 대기업 규제완화를 핵심과제로 경제운영기조를 펼 것이 아니라 원자재가격 연동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

이명박 경제팀이 거리낌없이 주창하고 있는 '친기업 정책'이 대기업으로 하여금 아무런 제재 없이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납품가·원자재 가격 연동제'라는 최소한의 시장 정의를 세우자는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제대로 되려면 “대기업의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고 중소기업에게는 활로를 여는 규제완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비단 납품단가 문제만이 아니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경영자금 조달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금리인상으로 인해 금융비용 부담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중소기업 대출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던 기업은행 등의 민영화는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더욱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산업은행·기업은행 민영화에 앞서 중소기업 금융 비용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센터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센터장입니다.
#중소기업 #납품가-원자재 가격 연동제 #대기업 납품단가 인하횡포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5. 5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