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갑게 등이라도 밀어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아버지 칠순 생신날, 처음으로 같이 목욕탕에 가다

등록 2008.03.05 08:30수정 2008.03.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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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에서 찍은 전체 우리가족 사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형, 큰매형, 큰누나, 큰형수, 작은형수, 본인, 작은형과 두살난 아기, 작은 매형, 작은 누나, 막내 동생, 아내, 아버지, 어머니, 작은누나 아들, 큰누나 첫째, 둘째 아들, (할머니 앞) 큰형 아들(할아버지 앞)큰형 딸, (아내 앞) 새롬이.
수덕사에서 찍은 전체 우리가족 사진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형, 큰매형, 큰누나, 큰형수, 작은형수, 본인, 작은형과 두살난 아기, 작은 매형, 작은 누나, 막내 동생, 아내, 아버지, 어머니, 작은누나 아들, 큰누나 첫째, 둘째 아들, (할머니 앞) 큰형 아들(할아버지 앞)큰형 딸, (아내 앞) 새롬이.윤태
▲ 수덕사에서 찍은 전체 우리가족 사진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큰형, 큰매형, 큰누나, 큰형수, 작은형수, 본인, 작은형과 두살난 아기, 작은 매형, 작은 누나, 막내 동생, 아내, 아버지, 어머니, 작은누나 아들, 큰누나 첫째, 둘째 아들, (할머니 앞) 큰형 아들(할아버지 앞)큰형 딸, (아내 앞) 새롬이. ⓒ 윤태

지난 주말은 아버지 칠순 생신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따로 잔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골 집으로 모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칠순 생신을 어떻게 치렀느냐구요?

 

생신날 아침 우리 6남매 내외와 아이들은 모두 충남 예산 덕산에 ‘집합’했습니다. 고향집은 서산과는 30분 거리이지요. 덕산 온천에 몸 담그고 인근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점심 식사하고 수덕사를 둘러 볼 예정으로 아버지 칠순 생신을 계획한 것입니다. 좀 이색적이지 않나요?

 

온천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고백하자면 35년째 살아오면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굳이 시내 목욕탕을 찾을 일이 없었습니다. 물론 시골집에도 목욕탕이 있지만 아버지와 같이 목욕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여름 날에도 아버지께서 먼저 씻고 나오시면 들어가곤 했으니까요.

 

김에 가려진 초라하고 갸날픈 아버지 모습

 

덕산 온천, 뿌연 목욕탕 안, 저는 네 살짜리 아들 새롬이를 챙기면서 언뜻언뜻 김에 가려진 아버지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초라하고 가냘프게 느껴지던지요. 다가가 살갑게 “아버지 등 밀어드릴게요”라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목욕탕에 가서 그런지 쑥스럽기도 하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욕 후 인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가면서 아버지 뒷 머리를 살펴봤는데 갑자기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버지 머리카락은 칠순이 되도록 흰머리가 몇가락 보이지 않았는데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번 설을 지나면서부터 흰 머리가 부쩍 늘었다는 것입니다. 늙어 가신다는 것을 새삼스레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아버지는 무척 즐거워하셨습니다. 평생 농사일만 알고 늘 무뚝뚝하시던 아버지인데 점점 늙어가서 그런 탓인지 자식들, 손자손녀들 다 모인 것이 무척 즐거우신가 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흥겨운 모습은 아니었거든요.

 

"다섯째에게 차 한 대 사주려고 한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흥에 겨워 한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니들한테 해줄 것 다해줬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바로 저에요) 차나 하나 해주려고 한다”고 공언하셨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비교적 뻔쩍뻔쩍한 차를 몰고 다니는데 쭈글쭈글한 마티즈를 타고 다니는 제 가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그 말씀 듣고 나니 어찌나 가슴이 찡하던지요. 저는 제 자식에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버지 자식인 제가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시골집에서 6남매와 손자 손녀들이 모두 모인 적인 있지만(일년에 두 번 정도) 시골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렇게 모인 것은 처음입니다. 그 많은 식구들이 시골에 한꺼번에 모이면 잠자리도 마땅치 않고 한끼 식사하는 것도 큰 일이기에 이번 칠순 생신은 당일치기로 온천과 외식을 겸한 것인데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도 처음 가 보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짧아 아쉽기는 했습니다. 각 가정 꾸려 제 삶 가꿔 나가느라 바빠서 당일 이벤트로 생신을 치르고 나니 간편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더군요. 특히 부모님 입장에서 말이지요.

 

명절이나 휴가 혹은 연휴 때 시골내려오면 늘 하시는 말씀 있지 않습니까?

 

“너 언제 올라갈래?”

 

차 막히니 하루 묵었다 일찍 올라가라 하시면서도 내심으로는 더 오래 있으면서 손자, 손녀들 재롱을 더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가족들이 수덕사 근처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고 계신다.
가족들이 수덕사 근처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고 계신다.윤태
가족들이 수덕사 근처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아버지가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고 계신다. ⓒ 윤태

 

 

2008.03.05 08:30ⓒ 2008 OhmyNews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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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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