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가족
황인규
접시를 비우자 장사를 해야 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호기심만 자꾸 메워넣을 수는 없었다. 20바트의 요금을 지불하고 돌아서다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주머니에는 이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아하, 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현지에서 보고 즐기고 취할 것만 생각했지 반대로 현지인에게 우리를 알리고 나를 소개할 것을 준비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이 생각은 태국을 여행하는 내내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마침내 지갑을 꺼내 우리 돈 천원짜리 한 장은 오빠에게 주고, 오백원짜리 동전은 동생에게 주었다. 오빠는 처음엔 쭈뼛하였으나 내가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니 고맙게 받는다. 곧이어 동생도 명랑하게 돈을 받는다. 그리고 자세히 살핀다.
내가 설명했다. 오빠는 1000이고 너는 500이란다. 동생은 생긋 웃으며 ‘괜찮아요, 문제없어요(It's Okay, No problem)’ 한다. 나는 속으로 그들 남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을 돈으로만 생각하지 말기를, 이 돈이 태국 돈으로 얼마인지를 먼저 계산하여 환전할 생각부터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외국인이 집안일을 열심히 돕는 우리를 착하게 여겨 그 상으로 준 것으로만 생각해다오. 그리하여 이 돈을 볼 때마다 우리의 노동이 외국인의 눈에도 좋아 보일 만큼 값진 행동이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 유흥가의 질척한 밤거리에 핀 연꽃 두 송이를 보며 나는 방콕의 이 거리에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남매의 흐뭇한 장면을 간직한 채 이 이국의 밤거리를 그만 쏘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즐길 것이 아니라면 번쩍이는 밤거리가 나에겐 더 이상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마음 한 편에선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가고 싶었지만 기왕 시내에 나온 거 BTR(태국의 지상전철)을 타보기로 맘먹었다. 카오산은 BTR 노선이 없어 중간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시내 관광지도를 보고 카오산 로드와 가장 가까운 역을 나름대로 정하고 일단 목적지를 거기로 했다.
실롬 역은 큰 길에서 보아 둔 탓에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막상 표를 끊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영어로 표기된 역 이름은 발음하기조차 힘들었다. 나의 발음이 그 역을 정확히 지칭하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따라서 창구에 가기보다는 자동발매기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것 또한 한 눈에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때 ‘캔 아이 헬프 유?’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물론 베리 베리 땡큐바리다.
이 말이 상가나 유흥지에서 들렸다면 당연 긴장을 하거나 그 호의의 문장을 상술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전철 매표창구 아닌가. 게다가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라니. 뒤돌아보니 웬 태국 아가씨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차표발매기에 부착된 노선을 보며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해 도와줄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등 뒤에 인기척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내가 차표를 어떻게 끊는지 고민하느라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십 년만 젊었어도 그녀의 호의를 관심으로 유도할 궁리를 해보기에 충분할 만큼 그녀의 인상은 선하고 예뻤다.
목적지가 카오산이고, 거기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을 가려고 한다니까, 그녀가 자기 표를 먼저 끊으며 나에게 시범을 보인다. 나 역시 똑같이 따라했다. 그녀는 내가 중간에 환승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침 같은 방향이니 자기를 따라오면 내릴 곳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런 행운이. 그녀는 영어도 유창하게 잘했다. 짧은 구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녀는 내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태국사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