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아름답게 빛내는 일이 무엇인가

부들과 인생

등록 2008.03.21 18:40수정 2008.03.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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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흔적들이 아주 진하게 남아 있구나.”

 

잔해가 아니라 통째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월로 인해 색깔만 달라졌을 뿐 형태는 처음 그대로이다. 겨울의 독한 추위와 에이는 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부들을 바라보면서 무심한 시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부들 전주시 삼천동의
부들전주시 삼천동의정기상
▲ 부들 전주시 삼천동의 ⓒ 정기상

초록으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던 모습들이 눈앞에 생생하다. 출렁이는 물결을 통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싱그러운 색깔들이 번득일 때에는 좋은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렇게 느끼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좀 더 좋은 것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앞서고 있었기에 좋다는 생각이 엷어졌다.

 

좀 더 좋은 모습을 원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원하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은 더 발전할 것이란 생각이 앞선다. 오늘의 소중함은 이런 기대감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이다. 이런 욕심이 과해지게 되면 오늘의 가치는 더욱 추락하게 되고 아예 무력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제의 결과가 오늘이고 오늘의 결과가 내일이다. 좀 더 나은 내일은 오늘을 충실하게 채워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좀 더 나은 내일을 추구하다가 정작 소중한 오늘을 소홀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욕심이 앞서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것이다. 화려한 내일을 원한다면 오늘을 더욱 더 성실하게 하는 것이 지혜이다.

 

색깔을 잃어버린 부들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후회가 앞선다. 왜 그때에는 알지 못하였을까?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부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이 파도가 된다. 그때 그 순간의 소중함을 알았더라면 오늘의 내 모습보다는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흔적 지난날의
흔적지난날의정기상
▲ 흔적 지난날의 ⓒ 정기상

부들의 색깔에서 죽음을 본다. 생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만은 죽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 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말이란 말인가? 부들처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단지 그 길이에 차이가 날뿐이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이순으로 향하게 되면 죽음을 실감하게 된다. 죽음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시시각각 나에게도 다가오고 있음을 가끔가끔 느끼게 된다. ‘아! 이렇게 하다가 죽어가는 것인가 보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  앉게 된다. 그것은 가야만 할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니, 나쁜 것만은 아니다. 피해갈 수 없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수용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많이 달라진다. 생각도 하지 않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던 보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을 인정하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아차리게 된다. 지난날 모두가 소중한 것이다. 그때의 순간순간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절정의 시간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20대는 열정의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30대는 야망을 키우는 세대이며 마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였던가? 이런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삶의 지혜 현명한
삶의 지혜현명한정기상
▲ 삶의 지혜 현명한 ⓒ 정기상

20대는 20대로 인생의 절정의 시기였고 30대는 30대로 소중한 때였다.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시기였다. 단지 그때의 소중함을 나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것을 보지 못하였고 욕심이 앞서다 보니, 더욱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었을 뿐이다.

 

흔들리는 부들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곰곰이 되새겨본다. 인생의 절정인 시기를 그냥 보내버렸지만, 그것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제 남아 있는 절정의 삶이라도 충실하게 채워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 바람에 날리고 있는 부들의 잔해를 바라보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빛내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전주시 삼천동에서

2008.03.21 18:4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사진은 전북 전주시 삼천동에서
#부들 #인생 #흔적 #절정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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