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장소를 제공해 준 허성배씨 가족. 허성배씨도 조선족 아내와 함께 가족을 꾸려 장난꾸러기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양호근
"한국어 배울 수 있는 학원도, 교재도 없다"
허성배씨는 "예전에는 국제결혼을 창피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좋은 점이 더 많다"며 "특히 중국인 아내를 통해서 아이들이 중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허씨의 경우 아내가 조선족이기 때문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문법 위주지만, 애들은 엄마한테 직접 중국어로 노래도 부르고, 한국어로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가르칩니다. 두개 언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이들이 혼동하지 않고 잘 하고 있습니다다."
반면 중국 한족 부인을 둔 이승훈씨의 경우 그가 중국어를 직접 공부하고 있다. 아내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결혼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대화말고 의사소통이 어렵다고 한다.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 남편이 직접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다.
아내가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이승훈씨는 "물론 결혼이민자센터 등에서 한글 교실을 일주일에 두 번, 두시간씩 한다"며 "하지만 한글 교실의 경우 아주 산발적이고 일시적으로 하고, 수업시간도 너무 짧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한글교실의 경우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이 가르치는 것이라서 전문성이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제주에는 중국어 배우는 교재나 학원은 많은데, 중국사람이 한국어 배우려면 학원이나 교재가 없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한글 교실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수많은 다문화 가정의 이민여성들에게 무료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
조금 더 전문적이고, 자세하게 배우고 싶어도 제주에는 중국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없고, 있어도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씨는 "서울지역의 경우 대학에서 야학식의 강의가 진행되는데, 제주에서는 제주대 같은 곳에서 정기적인 강좌를 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곳이 없어서 필요하다"고 강의 개설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그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뛰어난 인적 자원이고, 진정한 다문화로 갈 수 있는 것이지만 제주특별자치도가 말로만 특별자치도이고, 국제자유도시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수업도 학원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허성배씨도 "많은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글을 몰라서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라면 버스 노선에 작은 부분이라도 영어하고, 한자 정도는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봉사할 거에요"다문화 가정의 많은 결혼이민자들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이들은 다시 그동안의 도움을 되돌려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일했던 것을 돌아보면, 재일동포들이나 재미동포들은 마치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당당히 타지에서 성공해서, 결국 그 곳에서 봉사하면서 살고 있다.
한옥순씨도 "앞으로 중국 이민여성들도 제주에서 봉사를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한씨는 "결혼이민자들을 보면 중국에서 온 분들이 아주 많은데, 이런 모임을 통해서 한국사람들과 함께 자신있고 당당하게 살 것"이라며 "결혼이민자센터나 바르게살기운동 같은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우리도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한씨와 같은 중국이민여성들은 지난 2005년부터 이런 모임을 통해 노인정 등에서 목욕봉사를 하는 등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기금도 모아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환경미화 봉사도 하면서 자신들을 따뜻하게 받아 준 제2의 고향에 보답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