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국화 다발이 놓여있는 초등생 이혜진양의 책상. 사건 발생 80여일을 넘겨 결국 시신으로 돌아온 2명의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을 보며 언제까지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해야 하느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연합뉴스
"잊을 만하면 엽기적 아동 살해사건이 일어나는 이런 대한인국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란 말이에요?""범인은 늘 아이들 가까운 곳에 있던데, 그렇게 당하고도 경찰은 왜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는 거예요?"경기도 안양 초등학생 유괴·살해사건 이후 온 대한민국이 '이웃집 남자'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다. 2007년 현재 전국에서 발생한 미귀가·가출신고는 총 4만여 건으로, 이 중 아동 실종 건수는 8000여 건에 달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여성과 아동 대상 범죄가 전체 범죄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돌아오지 않은' 가출자들이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일반인들의 혼란과 공포도 높아만 간다.
GPS를 활용해 아동의 위치를 확인하는 이동통신사의 아동보호 프로그램에 부모들의 신청이 몰리고, 방송사의 유괴 예방 인형극 관람에 시청자들의 신청이 폭주하는가 하면, 아동 유괴의 원인과 현황, 대책을 국내외로 모색하는 심층프로들에 대한 재방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 개인 차원에선 절대 못막아미처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일상에 버젓이 들어와 있는 사이코패스(psycho-path, 범죄행위 자체를 즐기는 정신질환자)에게 개인은, 국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범죄에 대해 개인의 주의를 요구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단언한다. 개인의 안전주의조치를 강조하다보면 엉뚱하게 피해자 책임론과 국가 직무 방기론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범죄 예방과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의 장기적인 시스템 구축과 지역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 해체와 독신가구 증가에 따라 '소외'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경찰 시험과목 조정... 프로파일러 등 전문요원 양산해야이보다 좀더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의 양성과 활용도를 높이고, 전자감시제도를 확대하는 동시에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경찰 채용 단계에서부터 시험을 통해 지능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소양을 가늠하는 등의 실용적 방안들을 확립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구금형의 대체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해 현재 세계 10여 개 국에서 시행하는 '전자감시제도'는 일정 조건으로 석방(가석방)된 범죄자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범죄자의 손목이나 발목에 전자감응장치를 부착하는 제재 방법이다. 재범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복귀를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권침해 논란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국회를 통과, 올해 10월 시행 예정인 성폭행범을 대상으로 한 전자팔찌법안이 대표적이다.
또 초동수사부터 경찰이 전문성을 가지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 경찰공무원 채용 시험과목에는 경찰학 개론, 수사기법, 영어, 형법 등만 있을 뿐 이상범죄 대응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범죄심리학 등 새로운 과목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또 향후 이런 과목을 추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힌편으로는 경찰청이 지구대 초동수사 단계에서부터 민간 전문가의 자문과 개입을 적극적으로 구할 수 있도록 '체질 변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안양 사건의 경우, 경찰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의 의견을 흘려듣는 식이었다는 것.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안전요원'이라는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 범죄자들은 목격자를 제일 두려워하기 때문에 목격자만 있으면 절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안전요원 한 명이 감시카메라 100대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노인 유휴인력을 하루 일정 시간 동안 등하교 도우미, 놀이터 관리사 등의 새로운 직업군에 투입시키자는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등하교 도우미, 놀이터 관리사 등 ‘안전요원’ 새 직업 창출을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범죄 희생자에 대한 지역공동체의 관심이다. 피해자의 생존을 위해서는 실종 후 3시간, 이어서 24시간 내의 초동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지난해 4월 도입된 '앰버경고'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 과제다. 유괴 후 살해당한 희생아동의 이름을 따서 96년 미국에서 시작된 앰버경고는 유괴나 유괴 의심 실종사건시 전광판, 교통방송, 휴대폰 등을 통해 실종아동의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제도다. 2002년 앰버경고를 도입해 실종아동 30명의 목숨을 구하는 성과를 올린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최근 6개월간 아동 유괴 관련 사건이 단 1건도 발생하지 않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동 유괴를 다룬 MBC TV <PD수첩> 게시판에 올라온 "정부도, 경찰도, 시민도 반성해야 한다", "무관심했던 내가 창피하다. '내 아이'라는 생각을 가졌어야 했는데…" 등 시민들의 울림이 헛된 메아리로 끝나지 않는 것, 바로 여기에서부터 억울한 희생을 막는 첫 단추가 채워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