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여년전 약속 이어온 '세노인자선송덕제'

영광군 종산마을서 매년 3월말 시제...선행 주인공들 관련자료 없어 아쉬워

등록 2008.04.01 08:58수정 2008.04.0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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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한명 남기지 못한 채 마을 주민들에게 선행만을 베풀다 떠난 세 노인을 250여 년째 기려온 마을 주민들이 있어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특히 이 전설의 기록은 6.25 전란 때 모두 소실돼 주인공들의 이름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영광군이 관련자료 수집에 나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문 낭독 마을 주민 대표 최재면 옹이 제문을 낭독하고 있다.
제문 낭독마을 주민 대표 최재면 옹이 제문을 낭독하고 있다.채종진
▲ 제문 낭독 마을 주민 대표 최재면 옹이 제문을 낭독하고 있다. ⓒ 채종진

3월 31일 오전 영광군∙읍 종산마을 북종산 아래(기독신하병원 뒤편)에서 마을 주민 40여 명이 세노인자선송덕제를 지냈다.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으로 잘 차린 제상에 분향을 하고 제주를 올린 뒤 준비한 제문을 낭독하며 마을에 선행을 베푼 옛 어른들에게 감사의 뜻을 기렸다. 마을 주민들의 제배가 이어지고 음복 뒤 남은 음식을 나누며 하루 종일 마을 잔치를 벌였다.

 

세노인자선송덕제 마을 주민들이 세 노인을 기리기는 제를 올리고 있다.
세노인자선송덕제마을 주민들이 세 노인을 기리기는 제를 올리고 있다. 채종진
▲ 세노인자선송덕제 마을 주민들이 세 노인을 기리기는 제를 올리고 있다. ⓒ 채종진

이 마을 제일 어른인 최재면(79)옹은 “어릴 적 주전자를 들고 부모님의 뒤를 따라왔었던 기억이 난다”며 세노인자선송덕제(가칭)에 대해 설명했다.

 

최 옹에 따르면 조상들에게 전해 듣기로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세 노인들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곳간을 열어 식량을 나누며 선행을 베풀었으나 자손 한 명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제사만이라도 지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생전의 재산을 마을에 남기고간 이들 세 노인과 그 부인들을 기리기 위한 제사가 시작돼 약 250여년을 이어져 왔다.

 

세노인자선송덕비 96년2월2일 세운 비
세노인자선송덕비96년2월2일 세운 비채종진
▲ 세노인자선송덕비 96년2월2일 세운 비 ⓒ 채종진

  이들이 남긴 땅은 마을 주민이 매입해 집을 짓고 그 돈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적립하고 일부는 논을 매입해 임대를 했다. 매년 3월말일이면 그 임대 수익으로 제사를 지내고 그날은 마을 주민들의 잔칫날이다. 96년2월2일에는 흩어졌던 3쌍의 노인들의 묘를 한곳으로 옮겨 각각 합장하고 세노인자선송덕비도 세웠다.

 

  주민 조영환(53)씨는 “이 제사로 그 분들과의 약속도 지키고 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나누며 마을 화합도 이룬다”며 “다만 6.25 전란 때 기록이 소실돼 그 분들의 정확한 이름조차 몰라 그냥 노씨 어른으로만 부르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에 영광군 관계자는 “우리 지역에 이처럼 훌륭한 일이 이어져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토지 소유기록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해 그 분들의 기록을 상세히 찾아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광군∙읍의 신하리, 녹사리와 군서면 남죽리 경계에 있는 이 마을은 북종산(北鐘山) 밑에 자리 잡고 있어 ‘종산마을’로 불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영광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01 08: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영광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광군 #종산마을 #25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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