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꽃잎 위에 바람이 불고, 쏟아지는 빗소리에 밤은 깊은데' 가사를 몇 번 소리 내어 크게 읽으니까, 곡이 저절로 붙더라구. 그 장면이 가슴에 콱~ 꽂힌 거지. 밤새 가사를 되뇌는데 '하~~필이면', 이 대목에서 울컥 했어. '떨어진 꽃잎'만도 슬픈데 '바람이 불고' 게다가, '하필이면 이런 날 길 떠난 사람'이라니 가슴이 더 아프잖아."
임씨는 지난 1972년 나훈아가 부른 '고향역'을 작사·작곡하며 이름을 크게 알린 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하수영, 1976년), '대동강편지'(나훈아, 1981년), '옥경이'(태진아, 1989년), '부초'(박윤경, 1991년), '남자라는 이유로'(조항조, 1998년) '모르리·빈지게'(남진, 2003년), '사랑이 남아있을 때'(문희옥, 2006년) 등 주옥같은 명곡들로 대중가요계를 이끌어 왔다.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내가 교수... 가슴 벅차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15년 동안 심사위원을 맡으며 '딩동댕동~ 작곡가'로도 유명세를 치른 임씨는 올 3월, 전국 대학 중에서 최초로 생긴 '트로트 전공(충청대 음악과)'의 초빙교수로 위촉돼 일주일에 이틀간 학생들 앞에 서고 있다.
실용음악·싱어송라이터(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르는 사람)·실용가창 등 3과목을 맡은 그는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내가 트로트를 강의하는 교수가 됐다는 게 가슴 벅차다"며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수업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외모가 시원찮아서(웃음) 포기한 가수 대신 작곡가로서 살아온 경험을 살려 트로트의 진면목을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임씨의 트로트 사랑이 시작된 건 다섯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도 모르던 당시,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두 번 정도 들으면 외워 부르는 '트로트 신동'으로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바빴다는 것. 임씨는 즉석에서 어린 날 불렀던 옛 노래를, 태엽 전동기로 돌아가느라 중간에 늘어지곤 하는 가사까지 정확하게 재연해 웃음을 자아냈다.
임씨는 고교를 졸업한 뒤 광주와 전주 KBS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고, 제대 후에는 작곡가 나화랑 씨에게 곡을 받아 가수로 공식 데뷔했다. 하지만 당시 자신의 음색과 창법에 맞지 않는 미8군의 팝송 풍이 유행해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대신 그는 피아노를 독학으로 익혔던 음악적 재능을 살려 작곡가의 길을 선택했다.
"방송 나오면 가수? 대부분 '노래를 잘만 부르는 기능인'이야"
그의 곡들은 이처럼 대중가요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명곡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장인의 손끝과 가슴으로 정성스럽게 다듬었기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준다는 대중가요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이해가 더욱 쉬워진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물어봐.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 중 진정한 가수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귀에 많이 들리면 좋은 노래고 눈에 많이 보이면 훌륭한 가수인 줄 아는데, 아니야. 대부분 '노래를 잘만 부르는 기능인'이야. 가수는 가슴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훌륭한 가수와 좋은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자리를 함께했던 가수 남진씨는 "(임종수) 형님은 평소에 워낙 자상하시다"며 "하지만, 곡을 줄 때는 정말 냉철하다"고 거들었다.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가수에게 맞는 곡을 주는 것이 (임종수 작곡가의) 가장 큰 원칙"이라는 것.
실제 임 씨는 "흥겨운 트로트를 만들지 않는데, 그냥 가수에게 맞추려고 곡을 지어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작곡은 그 노래를 소화하고 가슴으로 녹여낼 수 있는 가수에게 갔을 때 빛이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오랜 인연을 거쳐 데뷔를 도와줬던 가수가 있지만 자신의 곡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 이제껏 한 곡도 주지 않았다는 것.
고향에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기념비 세웠으면
임 씨는 고향 순창에 대해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기억만이 가득 남아 있는 곳이지만,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의 정겨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향역'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고향역'은 명절 노래 프로그램에서 항상 먼저 나오는 곡이 됐어. 순창군에서 몇 번인가 기념비를 세우려 논의를 했는데, 가사에 '순창'이 없다고 무산되었지. 섭섭함 이전에, 순창 발전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라도 아깝잖아. '고향역' 말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임종수' 이렇게 해 놓으면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는 유달산만큼은 되지 않겠어."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뭔가 하나라도 더 관광 명소와 상품을 개발하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이 애창하고 있는 노래비를 세운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3년 후, 그가 칠순이 되는 해에 "순창에 꼭 기념비를 세우자"고 의지를 다졌다.
임 씨는 끝으로 "'성악은 고급 문화, 트로트는 저급 문화'라는 등 우리 대중가요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트로트는 성악 등이 가지지 못한 고유의 맛깔난 매력이 있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성악으로 부르면 감정이 전달되겠어? 아니야. '아리랑'을 봐. 얼마나 질긴 설움과 한이 배어 있어. 우리 대중가요를 잘 이어가야 해. 대중가요 학과가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제2의 삶을 산다는 각오로 학생들과 어울릴 거야.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키우며 대중가요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