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를 일으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몰입교육' 추진, 국민들의 끌탕을 부른 이른바 '고소영 내각'.
뿐만 아니다. 출범 직후부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강부자(강남의 부자)를 위한 정부와 정당'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고, 이어진 대북 강경발언으로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시켜 "10년간 쌓아온 남북공존의 안정적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듯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연일 하락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빠진 지지율은 어디로 간 것일까? 통합민주당은 내심 떨어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자신들에게 오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지지율 역시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스타급 정치인의 대결로 세간의 관심을 모은 서울 동작을 지역구.
대선 후보였던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와 '국회의원 중 재산이 가장 많은'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가 맞선 이곳에서 3월 31일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32.7%와 47.0%.(KBS-MBC 공동조사. 조사대상 500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플러스마이너스4.4%P) 14.3%P 차이다.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각종 보도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이전의 조사에서보다 오히려 더 벌어졌다.
민주당으로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강서벨트'의 전략거점으로 삼았던 이 곳에서 어느 정도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면 수도권 전체의 총선결과는 보나마나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지율 저하'가 곧바로 '민주장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증을 현장의 표심을 들어봄으로써 풀어보기로 하고 1일 오전 동작구 사당동을 향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선거에 무관심... 지지하는 이유도 비교적 '단순'
지하철 7호선 남성역 부근에서 10명이 넘는 동작구민들을 붙들고 "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 "어떤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나는 선거에 관심 없다" 혹은, "누가 돼도 비슷할 것 아냐? 먹고사는 것도 바빠"라는 냉소적 대답.
이런 상황이니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빠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민주당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를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유권자들의 정치허무주의와 정치인 혐오증을 새삼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바로 이런 무관심이 '빠진' 지지율을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게 지지 후보를 밝히는 주민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말한 '지지 이유'는 비교적 단순했다.
백일용(44)씨는 "서민적인 매력이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했다"는 매력을 들어 정동영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 40년 이상 동작구에서 살았다는 60대 남성 역시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을 찍겠다"는 짤막한 말로 정동영 후보 지지의사를 표했을 뿐 민주당 지지의 명확한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단순한 이유'를 말하는 건 정몽준 후보 지지자도 다르지 않았다. 백상엽(39)씨는 "재력과 집권당의 실세라는 장점이 있으니까 이 지역을 발전시킬 것"이라며 정몽준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비교적 젊은 유권자인 이홍민(24)씨는 "정동영 후보는 비전을 말하기 보단 비판을 많이 해서 싫고, 정몽준 후보는 대운하를 추진하는 한나라당이라서 찍지 않겠다"는 말로 '소중한 한 표를 던질 후보가 없다'는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지도 측면에서 대한민국 수위를 다투는 두 거물 정치인이 출마한 동작을 지역임에도 유권자들의 정치와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이 정도이니 다른 지역구의 무관심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에서 빠지고 있는 지지율이 대부분 '투표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였다.
정동영 후보 "뜸들이는 시간이 지나면 민주당 지지율 오를 것"
그렇다면 중간에서 '사라져버린 지지율'에 관해 후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오전 10시 30분 동작구 사당5동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정동영 후보는 "밥을 하는데도 순서가 있다.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빠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시간이 지나면 민주당쪽을 향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선거 때는 하루가 일주일이나 열흘처럼 상황이 급변한다"고 말한 정 후보는 "한나라당쪽에서 이탈한 표심이 민주당 아니면 어디로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우리가 (지지율을 가져올만큼) 잘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정 후보는 또 "골목에서 인사를 나눌 때면 썬팅된 차창을 내리고 먼저 악수를 청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바닥에서 (민주당과 나를 지지하는) 바람이 일고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동작구민은 자존심이 있다.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란 정 후보의 낙관적 전망도 '한나라당 지지율 하락=민주당 지지율 상승'이란 공식이 곧 실현될 것을 믿고 있기에 나온 것으로 보였다.
반면 정몽준 후보는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가 4월 9일 선거일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듯 극도로 말을 아꼈다.
오전 11시 50분 중앙대 '먹자골목' 주민들을 만나던 정몽준 후보는 "다녀보니 지역민의 반응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인사하러 많이 다녀"라는 짤막한 대답만 내놓았다. "총선 필승 전략이 있는가"라는 물음에도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젊은층의 (한나라당) 지지도 높아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 후보의 사인을 받으려 하고, 핸드폰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정몽준 후보측 지지자의 말에서 '빠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보신당 김종철 "두 사람 모두에게 실망한 주민들은 나를 지지"... 하지만
두 정 후보에 맞서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의 30대 젊은 후보 김종철씨는 같은 날 오후 통화에서 "이번 총선을 대선으로 가는 교두보로 삼고 있는 정동영, 정몽준 후보의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에 실망한 사람들이 내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빠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지지율과 오르고 있지 않은 민주당의 지지율이 진보진영을 향해 오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두 정 후보와 달리 서민과 소외계층을 중심에 둔 정책으로 심판받겠다"는 김종철 후보의 지지율은 아직 한자리 수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라 이 해석에 무게를 싣기는 힘들어 보인다.
2008.04.02 12:5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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