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
구자민
"재정적인 문제로 다시 K2를 오른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는데, 2개월 만에 모든 장비와 비용이 해결됐습니다. 스페인 친구 덕분에요.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좋았던지, 전 다시 8000미터 급 히말라야 14좌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죠. 아니, 제 마음속에는 항상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헌데 좋았던 만큼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들과는 피부색도 틀리고 언어, 문화가 틀리기 때문이었죠. 가장 중요한 건 대원들간 믿음과 팀워크인데. 그게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산을 오를 수 없죠. 서양인들이 워낙 개인주의적이라 믿음이 생기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동양인 팀과 서양인 팀간 실력대결에서도 자신도 없었죠. 기술적 체력적으로요. 걔네들만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하면 무슨 망신인가요."엄 대장은 K2에 오르기 전, 자신과 두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첫째는 동료를 위한 '희생', 둘째는 무조건 한발 더 가자는 '솔선수범' 정신이었다. 실제로 현장에선 서양인 팀 대원들과 거리감이 느껴졌고, 팀워크를 끌어올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초심을 잃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짐했던 대로 위험한 일에 내가 가장 먼저 나서고, 힘들어도 남보다 한발 더 움직이니 끝내 대원들이 저를 인정했고, 서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완벽히 하나가 됐다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 엄대장은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다. 300미터를 남겨두고 8300미터 히말라야 산 중턱에서 50여일을 보낸다. 체력도 바닥나고 사기도 급격히 저하됐다. 이젠 모두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엄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집에나 좀 갔으면 좋겠습니다. 대장님.""미스터 엄, 이제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는 게 어떻겠소."엄 대장도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방바닥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허나 차마 내려가자는 말은 못했다. 다시는 이렇게 끈끈하게 뭉치지 못하리라, 다시는 이 대원들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된다. 나는 절대 못 내려간다.""그럼 기회는 오직 한번이요.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려가는 겁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히말라야 16좌 정복,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세 번째 시도에 마침내 성공했다. 2000년 7월 31일의 일이다. 엄 대장은 대원들을 끌어안으면서 울었다. 그 순간이 너무 값졌다. 세계에서 8번째로, 대한민국에선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올랐다.
"만약 실패했다면 다시는 이 대원들끼리 뭉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대원들을 보내지 않아서 너무 기뻤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엄 대장은 2007년 히말라야의 위성봉이라 불리는 얄룽카, 로체사르까지 총 16좌를 모두 올랐다. 16좌까지 오르면서 총 38번의 도전을 했고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제가 오늘날 이런 특강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동료들의 값지고 고귀한 희생 때문입니다. 정상이 가까워오거나 위기의 상황을 맞을 때, 수없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동료들을 떠올립니다. '성공에 대한 욕심은 버리자. 동료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단지, 대신 이루는 것뿐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엄 대장은 희생정신을 바탕에 둔 팀워크와 동료애를, 성공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강조했다.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것보다는 끈기와 인내, 우직함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도 버리세요.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은 더 값지게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