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3)

[우리 말에 마음쓰기 281] '희화화' 다듬기

등록 2008.04.17 11:34수정 2008.04.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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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인간 속성에 대한 이런 식의 석기시대식 희화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낸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실제 삶에 비추어 보면 금세 근거를 잃어버린다 ..  <민중의 세계사>(크리스 하먼/천경록 옮김, 책갈피, 2004) 29쪽

 

“인간(人間) 속성(屬性)에 대(對)한”은 “사람이 어떠한가를 놓고”로 손보고, “이런 식(式)의”는 “이러한”으로 손봅니다. “우리 조상(祖上)들의 실제(實際) 삶에”는 “우리 조상이 어떻게 살았는가를”이나 “우리 옛사람이 살아온 모습에”로 다듬고, “근거(根據)를 잃어버린다”는 “할말을 잃어버린다”나 “거짓임이 들통난다”로 다듬어 줍니다.

 

 ┌ 희화화(戱畵化) : 어떤 인물의 외모나 성격, 또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

 │   럽게 묘사하거나 풍자함

 │   - 희화화된 비극 / <적벽가>에서는 조조라는 영웅이 희화화되고 있다 /

 │     고위 관료의 부정부패를 희화화하다 / 한민족의 애환을 희화화하고 있다

 ├ 희화(戱化) : 익살스러운 것이 되게 함

 ├ 희화(戱畵)

 │  (1) 실없이 장난삼아 그린 그림

 │  (2) 익살맞게 그린 그림

 │  (3) 익살맞고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4) 캐리커처

 │

 ├ 이런 식의 석기시대식 희화화는

 │→ 이런 말장난은

 │→ 이런 우스꽝스런 이야기는

 └ …

 

보기글은, 사람마다 보여주는 모습(속성)을 마치 예전 석기시대 투로 익살맞게(또는 재미있게, 또는 우스갯거리로) 그려내거나 보여주는 일은 역사 사실과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은 통째로 다듬어서 다시 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먼저, 보기글에 쓰인 낱말을 그대로 살리면 “그러나 인간 속성을 이처럼 석기시대를 빗대어 웃기게 그리는 일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낸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 실제 삶에 비추어 보면 금세 근거를 잃어버린다”쯤으로. 다음으로 낱말도 하나하나 다듬으면 “그러나 사람이 어떠한가를 놓고 이렇게 우리 옛사람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놓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낸 옛사람들 삶에 비추어 볼 때 거짓임이 금세 드러난다”쯤으로.

 

 ┌ 영웅이 희화화되고 있다 → 영웅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

 ├ 애환을 희화화하고 있다 → 아픔을 웃음으로 그려 놓고 있다

 └ 희화화된 비극 → 웃음으로 그려낸 비극 / 재미있게 담아낸 비극

 

‘희화(戱化)’라는 말이 있군요. ‘희화화’와 거의 같은 말로 보입니다.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낱말인 한편, 뜻을 헤아릴 때에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낱말은 우리 삶터 곳곳에 두루 쓰이며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 우스꽝스럽게 그리다 (o)

 └ 희화화하다 (x)

 

역사를 이야기하건 사회를 이야기하건 ‘우리 말’로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우리 말로’ 창작을 하거나 번역을 하면서 나오는 역사책이나 철학책이나 과학책이나 다른 여러 가지 책을 보면, 가만가만 읽으면서 차근차근 헤아리기 꽤나 어렵습니다. 참된 우리 말, 누구나 손쉽게 읽고 느낄 만한 우리 말로 쓴 책이 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학문을 하건 책을 쓰건, 또 번역을 하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건, 또 기자가 되어 글을 쓰건 방송국 사회를 맡건, 또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학문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만 알아먹는 말로 펼치는 이야기는 자기들끼리한테도 썩 좋지 못합니다. 게다가, 세상사람이 널리 나누며 함께 즐길 학문이나 책이 될 수 없습니다. 말과 글이 우리 뜻과 생각을 주고받는 그릇이나 이음길은 되어야 할 텐데, 적어도 이만한 그릇 구실도 이음길 노릇도 못하면 어찌하나요.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자기는 알지만 남은 모르게 되는 이야기라면, 남한테 가르치기 어렵고 즐겁게 대물림하기 까다로운 지식이라면, 이러한 이야기와 지식은 우리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이 되며 아름다움이 될는지요. 문화라 한다면, 예술이라 한다면, 삶에 뿌리내리고 삶에 깊숙이 스며들도록 갈아 주고 닦아 주고 보듬어 주고 추슬러 주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나눔이 아닌 용두질이 되는 학문은 학문이 아닌 지식 자랑이라고 느낍니다.

 

 ┌ 부정부패를 희화화하고 있다 (x)

 │

 ├ 썩은 정치를 비꼬고 있다 (o)

 └ 썩은 정치를 비아냥거리고 있다 (o)

 

학문도 책도, 번역도 창작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 한 마디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만, 함부로 해서도 안 됩니다. 학문과 책과 번역으로 담아내는 말이든 집에서 주고받는 말이든, 가장 알맞고 올바르고 깨끗한 말을 꺼낼 때가 가장 아름다우며 살갑고 즐거웁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밥 한 술을 떠도 자기 몸을 생각하면서 가장 맛이 있고 몸에 도움이 될 밥을 떠먹어야 하듯, 말 한 마디를 할 때에도 ‘말하는 나’와 ‘말을 듣는 남’을 고루 헤아리는 말을 해야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기만 아는 테두리에서 읊조리는 말은, 자기부터 제대로 모르면서 읊조리는 말이기 일쑤입니다. 자기부터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 한다면, 누구한테나 수월하고 살뜰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풀어내어 이야기하기 마련입니다. 지식이나 생각깊이가 놀랍도록 커서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쓰는 말과 글이 형편없거나 잘못되어서 알아듣기 어렵게 한다면, 이에 따르는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하는지요. 누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가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4.17 11:3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화 #우리말 #우리 말 #화化 #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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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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