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순신 장군 위인전이 다 있네. 김정호도 있고, 허준도 있고…."
지난 4월 11일 도쿄 근교 고다이라시(市)의 소카초등학교 로망도서관. 동시에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도서관 한 켠엔 한국 도서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와카이 사치코 소카학원 부원장에게 도서관 취재 안내를 받은 기자는 한국 도서 코너를 둘러보다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표지에 '성웅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향해 활을 쏘는 그림'이 있는 '이순신 위인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왼쪽에는 김정호, 오른쪽에는 허준 위인전이 있었다.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데 대해서도) 지도하고 있다. 역사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특히 소카학원 창립자가 '한국은 역사나 문화적으로 일본에게 큰 은혜를 베푼 문화 대은의 나라'라고 평가했다. 우리 학생들은 그 같은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와카이 사치코 부원장의 설명에 이어 진노 노부히로 소카학원 홍보실장은 "한국 손님들이 수업을 참관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직접 설명할 때도 있다"면서 "책으로만 역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카초등학교가 일본 최고의 독서학교로 자리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이 학교의 교훈은 무엇이고, 교사들의 교육 방침은 무엇일까?
소카초등학교 응접실에서 학교 관계자들과 일본의 문자부흥운동, 그리고 독서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석자는 마쓰나가 마코토 소카초등학교 교장, 와카이 사치코 소카학원 부원장, 미추하타 토시아키 소카학원 연구부장, 진노 노부히로 홍보실장이다. 한국의 교육정책 담당자들과 일선 교사들이 참고할만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다.
- 일본 젊은이들이 독서와 신문읽기를 멀리해 걱정이 많다던데.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문제다. 서적과 신문이 잘 팔리지 않는다. 문자로 된 매체보다도 텔레비전, 영화, DVD와 같은 영상물이 인기가 많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독서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와카이 사치코 소카학원 부원장)
- 교장 선생이 학창 시절에 독서한 정도와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독서량을 비교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전철 안에서도 만화나 손전화, 게임을 즐긴다. 소설책을 보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의 학창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또래들은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세대였으므로 여러 가지 사상이나 철학에 빠진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어려운 철학 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고 이론 투쟁을 벌였다. 여하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마쓰나가 마코토 소카초등학교 교장)
- 일본이 경제 대국이 된 원동력이 독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그 학자 나름대로의 견해인 것 같다. 내 관점은 약간 다르다. 이미 150년 전에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발표하면서 '활자가 없으면 세상이 어두워진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독서를 많이 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시급한 게 아니라 마음을 풍부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독서는 사람들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책을 읽고 글쓰는 게 무척 필요하다. 단순히 경제성장을 위해 독서를 하자는 논리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미추하타 토시아키 소카교육연구소 연구부장)
- 활자를 멀리하고 영상만 추구하면 왜 문제가 되나.
"영상문화만 쫓으면 신경질을 내기 쉽고, 판단력도 흐려지기 쉽다는 경향을 보인다는 말이 있다. 텔레비전이 청소년 범죄의 원인이 된다. 그에 반해 독서는 단순한 글읽기가 아니라 인격 형성의 골격이 된다."(미추하타 토시아키 연구부장)
-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보는 것만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문자로 된 정보를 읽으면 모르는 세계를 인지하고 창조력도 쌓을 수 있다. 영상은 실체험이 아니라 모의체험이기 때문에 마음과 머리, 몸을 제대로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미추하타 토시아키 연구부장)
- 영상문화와 활자문화를 비교한다면.
"영상문화는 수동적인 문화이고, 활자문화는 능동적인 문화다. 책 읽어주기는 음성언어다. 독서를 통해서 사고력과 판단력 등을 길렀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활발하게 토론 수업도 할 수 있는 것이다."(와카이 사치코 부원장)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른들이 먼저 독서하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해야 진정한 독서교육을 할 수 있다. 소카학원에서는 창립자 정신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한다. '독서를 활용한 인간형성'을 중시하는 창립자의 교육이론을 실천하는 것이다. 학부모들도 여기에 협력한다. 그래서 집안독서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미래를 암담하지 않게 하려면 먼저 어른들이 진지해져야 한다. 이젠 어린이 교육을 하기가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손전화나 텔레비전 등 공부하지 않게 하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마쓰나가 마코토 교장)
- 독서와 다른 과목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독서는 모든 공부의 기초이므로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교육의 분량보다도 질적 향상으로 이끌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정보를 남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키워 주는 방법의 하나로 (일본의 공립 초등학교들과는 달리) 영어 지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영어를 배우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 훨씬 도움이 된다. 우리 학교는 일반 교육을 하는 교육공간이다. 때문에 졸업생들이 세계 평화의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할 수 있게 지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독서다."(마쓰나가 마코토 교장)
- 일본이 2005년에 활자문화진흥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의 의의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카초등학교는 활자문화진흥법 시행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립 초등학교는 지역 평등교육을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립이 아니라 사립 학교다. 활자문화진흥법이 나오기 전부터 학생들이 문자문화에 익숙해지도록 지도했다. 독서교육을 철저하게 시행하라는 창립자의 당부가 있었고, 교직원들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공립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활자문화진흥법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우선 예산을 지원해 주고, 의무적으로 사서를 두게 하므로 공립학교에는 아주 유익한 법이다."(마쓰나가 마코토 교장)
"활자문화진흥법은 쉽게 말해서 도서관이나 사서를 늘리자는 법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이미 이것을 실천하고 있다."(미추하타 토시아키 연구부장)
- 소카학원은 전 직원이 다 독서전문가라고 들었는데.
"사서가 몇 명 근무하는지가 아니라 교사들이 다 독서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 학교 도서관은 사서 한 명이 관리하는 게 아니다. 교사는 물론 학부모와 졸업생이 모두 독서지도요원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여러 가지 형태로 도서관 운영에 참여한다. 학부모와 졸업생, 그리고 외부에서 시찰 온 손님들이 책을 많이 기증한다.(와카이 사치코 소카학원 부원장)
- 소카초등학교의 독서교육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자체 평가하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할 것으로 본다. 학교마다 교육방침은 있겠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독서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는 드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마쓰나가 마코토 교장)
- 그밖에 소카초등학교의 독서교육정책과 다른 학교의 차이점이 있다면.
"우선, 독서주간을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다른 학교는 보통 1년에 단 한 번 독서주간을 두는데 우리는 세 번이나 독서주간을 둔다. 6월 6일, 11월 18일, 2월 11일이다. 또, 꼭 읽어야 하는 추천도서를 제공하고 있다. 많이 읽는 학생은 무려 5,000권을 읽기도 한다. 어느 2학년 학생은 (지금까지) 2,000권을 읽었다고 한다.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 모두 졸업 전까지 500권을 독파하자는 게 목표다. 사서와 교사들이 여러 방면의 책을 읽고 연구하여 다양한 책을 추천하고 있다."(와카이 사치코 부원장)
"일 주일에 한 번 1학년에서 4학년까지 도서관에서 도서시간을 설정하는 것도 특징이다."(진노 노부히로 홍보실장)
- 소카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책을 읽게 권유하나.
"크게 세 가지 주제, 즉 평화와 인권, 그리고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을 많이 읽게 한다. 6학년 때 졸업논문을 쓰는데 전쟁이나 원폭, 2차 세계대전, 진주만 폭격 등을 연구 과제로 삼기도 한다. 직접 하와이에 가서 일본의 진주만 폭격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그냥 독서하게 하는 게 아니라 목적 의식이 뚜렷한 독서를 하도록 지도한다."(와카이 사치코 부원장)
- 평화, 인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독서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일본이 과거에 한국을 침략한 역사도 가르치고 있나.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데 대해서도) 지도하고 있다. 역사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특히 소카학원 창립자가 '한국은 역사나 문화적으로 일본에게 큰 은혜를 베푼 문화 대은의 나라'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그 같은 역사를 잘 알고 있다."(와카이 사치코 부원장)
-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역사를 접하나.
"우리 학교를 방문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손님들이 수업을 참관하거나 강연할 기회가 많다. 학생들은 이들을 직접 접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소카초등학교의 최대 특징이다. 책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운다고 할 수 있다."(진노 노부히로 홍보실장)
- 한국에 관해 또 어떤 교육을 하나.
"효도 교육도 신경쓰고 있다. 독서와 외국어 교육을 중시하지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창립자는 한국이 효도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며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효도심을 가르쳐 준 게 한국이라며 이것을 학교에서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진노 노부히로 홍보실장)
- 앞으로 독서교육의 방향은.
"이미 독서교육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권수보다는 질적 향상을 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 일본에서는 독서교육이 국어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교재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카학원에서는 초, 중, 고 모두 교재를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마쓰나가 마코토 교장)
2008.04.22 15:5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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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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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폭격도 과제로... 목적 의식이 뚜렷한 독서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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