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정치가 필요하다

[서평]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를 읽고

등록 2008.04.22 11:54수정 2008.04.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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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책세상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 ⓒ 책세상

'다수결원리' 근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특히 선거에서 다수결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단 한 표를 더 얻은 정당과 후보자가 행정부, 국회, 지방정부, 지방의회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다수결에 패배한 소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됨으로써 소수는 다수에게 정책 결정뿐만 아니라 정의와 보편성까지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특히 특수 종교 신봉자, 외국인노동자, 동성애자, 절반이지만 소수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여성들은 다수자에게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다수는 자기와 다른, 소수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소수가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다수 지배 정치 문화를 비판한 이남석이 지은 책세상 문고·우리시대 044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는 다수와 소수의 차이를 극복하고, 소수가 주체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

 

"우리는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 조차 없는 것은 아닌가? 차이는 우리와는 무관한 주제였고, 정치의 주제로도 성장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차이 자체가 억압받고, 정치에서 배제당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었다." (9쪽)

 

최근 들어 소수자에 대하여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이 차별받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그들이 주체로 등장하는 일 특히 정치영역에 참여하여 당당한 권리 행사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음을 이남석은 지적한다. 즉, 진정 차이를 인정하는 일은 차이의 주체들이 권력체제 안에서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주목할 점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무산자, 특정 종교 신봉자, 특정 이념자들은 소수이지만 이들을 다 합치면 다수이다. 그리고 다수결에 의하여 권력을 쥔 자들은 사실 소수다. 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 원리이지만 결국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다수결에 의하여 집권한 지배 집단은 '차이에 대한 무관심(indifference to difference)'하다. 지배집단의 이런 차이에 대한 무관심을 결과는 무엇일까? 이남석은 "지배집단은 자신의 경험, 문화, 사회적 능력과 상이한 차이 집단에게 끊임없이 불이익을 준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인 반공은 지금도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을 옥죄이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체제를 지배하면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더욱 힘들어졌고, 그들이 내세우는 권리는 무시되거나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은 오히려 탄압까지 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비극은 지금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문화와 정치, 이념과 성별, 종교와 신념, 성적지향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 구조를 극복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차이를 인정함으로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단까지 밀고 가며, 근·현대 정치의 토대가 되는 추상적 개인주주의를 부정하며, 개인이 아닌 집단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운다. 이러한 차이의 정치가 가정하는 '좋은 사회'란 집단의 차이를 제거하거나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집단들이 모두 평등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이다. 결국 좋은 사회란 각 주체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차이를 정치의 동반자 관계로 설정하는 사회." (24쪽)

 

이남석은 Chantal Mouffe의 말을 빌어 민주주의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지배' 또는 '정부와 피지배자의 동등성'으로 정의"된다 말하고 있다. 인민의 능동적 참여. 이는 각 인민 개체가 주체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고, 권리의 행위자인 동시에 권력의 주체라 할 수 있다.

 

유럽이 근대 국가로 발전한 배경에는 파벌간의 대립, 중세 자유인 간의 대립을 의미하는 싸움을 조정하고, 명분 대립이었던 종교 존쟁을 종식시키고, 그 지역 내의 '평화, 인전, 질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하기 때문이라고 이남석은 말한다.

 

차이의 정치를 성공시킨 나라로 캐나다를 예로 든다. 캐나다 안에서 퀘벡주는 프랑스언어권로 영어권이 지배하는 캐나다에서 독립을 끊임없이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퀘벡주 안에 사는 인디언들은 연방정부에서 독립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독립과 연방정부에 귀속되는 상황은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퀘벡주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캐나다 내의 다민족과 다인종이 요구하는 자치정부 권리와 다인종의 권리는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영을 위한 자치 정부와 다인종의 권리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더 큰 캐나다 안에서 공영을 위한 다민족과 다인종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122쪽)

 

캐나다는 헌법과 정치의 다양성 인정, 각 주체들의 다양한 참여, 공영을 통하여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종과 언어 차이를 극복함으로 차이의 정치가 현실 사회에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이남석은 말한다.

 

정치는 권력이다. 권력은 원래부터 선하지 않다. 하지만 정치를 통하여 사회는 운영되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이가 정치에 참여함으로 특정 집단, 소수집단, 특정이념, 특정 신념만이 정치 주체가 되어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정치가 필요하다. 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 형식민주주의는 실현되었지만 실질과 평등 기준으로 보면 아직 민주주의가 갈 길은 멀다. 우리는 이 실현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차이의 정치는 보편인간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  이남석 지음 ㅣ 책세상 ㅣ 4900원

2008.04.22 11:5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  이남석 지음 ㅣ 책세상 ㅣ 4900원

차이의 정치 - 이제 소수를 위하여

이남석 지음,
책세상, 2001


#차이의 정치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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