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광장앞에서 성화가 출발한 뒤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충돌한 가운데 한 중국 유학생이 발로 차 시민이 넘어지고 있다.
유성호
중국 민족주의의 한계 "나는 항상 피해자"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TV에 보이는 장면을 볼 때 국민의 반응이 격앙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중국 전문가들은 각자 견해가 다르면서도 침착한 대응을 주문하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우선 이번 사태의 바탕으로 지목된 중화 민족주의의 문제가 제기됐다.
중국인들은 아편전쟁(1840년) 이후 항상 자신들을 서구 제국주의에 침략을 당한 피해자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누구의 눈에도 중국이 먼저 타국을 침략한 것이 분명한 1979년의 중월 국경분쟁은 한국전쟁 이후 중국이 끼어든 전쟁 가운데 최대 규모였음에도 정작 중국 안에서는 잊혀진 전쟁이 됐다. 중월 국경분쟁은 중국이 항상 피해자였다는 '알리바이'를 깨기 때문이다.
한 켠에 이런 피해 의식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로 쌓인 경제력(지난해 기준 전 세계 GDP순위에서 중국은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4위)에 바탕한 자부심이 강하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중국 시위는 비판해야 하지만 어떻게 비판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중국이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로 부상 중인데 그들은 아직도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일방적인 피해자로 자신들을 인식하고 있다"며 "따라서 그들의 민족주의가 종종 정서적이고 과격한 반응으로 표출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인들은 아편전쟁 및 그 이후 시기에 그들이 서구에게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대했던 것은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편에서는 이런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 또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 성장에 따른 자부심이 묘하게 얽히면서 지금과 같은 폭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 한국 언론들은 이번 중국 유학생들의 시위를 "얼마나 한국을 얕잡아 봤으면 어찌 감히 수도 서울에서~"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해석이다. 성화봉송을 둘러싼 충돌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해 계속 상승작용을 일으켜 왔다. 그리고 거의 한 달 동안 진행된 이런 상황이 최종적으로 서울에서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한국은 중국인 수십만명이 살고 있어 밀집도가 높은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남주 교수는 "중국 시위대가 한국을 얕잡아 봤다는 시각은 되레 우리를 너무 낮춰보는 것"이라며 "이번 서울에서의 폭력사태가 한국을 겨냥한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유학생들의 애국주의
아편전쟁 이후 거의 160년간 서구에 멸시를 당하다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치려고 하는데 난데없는 티베트 사태가 이를 방해하고 나선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게 베이징 당국의 입장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만약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해외에서 성화봉송 반대 시위가 발생했다면 한국 유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은 용납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중국에 유학 중이던 한국 학생들은 단지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을 뿐 수천명씩 주택가까지 떼 지어 몰려다니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다녔다"며 "이것도 한국적 애국주의의 발현이었고, 중국인들 눈에는 대단히 불쾌한 사건이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는 "개혁·개방 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면서 등장한 것이 중화애국주의"라며 "과거에 중화애국주의는 말에 불과했지만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들은 올림픽만 끝나면 중국이 세계 패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중국 유학생들은 올림픽 방해 시도는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생각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 시위대도 중국 정부도 의도야 어쨌든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성화봉송을 통해 전 세계에 베이징 올림픽을 더 널리 알리고 이미지를 좋게해야 했으나 결과적으로 폭력 사태만 부각됐다.
주장환 동서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중국 유학생들은 근원적으로 국가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 전체와 개인의 이익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되레 전자에 귀속 내지 복속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티베트 사태에 대해 왜 한국인이 중국의 입장에 적대적인가 억울해할 것이다, 그러나 티베트인들도 한족들의 적대적 대응에 마찬가지 심정이라는 것을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주 교수는 이번 사태가 중국의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교육 때문이라는 일부 지적을 비판했다. 그는 "애국주의나 민족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전 세계가 이른바 세계화(globalization)하면서 동시에 강한 민족의식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29일 <월스트트저널>에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는 끝나가고 개별 국가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는 '신내셔널리즘'(신국가주의)이 대두하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즉 이번 사건으로 중국 전체를 폭력집단으로 매도하거나 원래 그들은 원래 그런 자들이라는 식으로 즉자적인 비판을 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