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삼십 년에 호미 들고 김을 메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 행복하다 속삭입니다

등록 2008.05.06 14:11수정 2008.05.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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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영차 흙을 밀고 올라 온 우리집 텃밭의 장한 새싹
새싹영차 흙을 밀고 올라 온 우리집 텃밭의 장한 새싹문인숙
▲ 새싹 영차 흙을 밀고 올라 온 우리집 텃밭의 장한 새싹 ⓒ 문인숙

 

처녀 적 두메산골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두견새 슬피 우는 깊은 산자락 아래 조그마하고 정갈한 초가집 아랫채 방 한 칸을 세 들어 살았습니다. 퇴근해서 그 초가집 오목한 내 방, 엄마가 만들어준 꽃무늬 이불에 꽃무늬 커튼이 처진 내 방으로 돌아오면 밤이 맞도록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태어나 먼지 이는 자갈길 신작로를 타박타박 걸어다니며 공부를 하고, 잠시 꿈결인 듯 서울로 올라와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 두메산골로 내려가 직장에 다니던 그때, 자나 깨나 서울역 기차소리만 귓가에 맴을 돌았습니다.

 

언젠가는 내 서울로 가리.

 

서울 가고픈 이유는 단 한가지, 그곳에만 가면 그 유명한 음악회다, 뮤지컬이다, 연극이다, 미술 전시회다 그렇게도 멋진 공연들을 맘껏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왜 그렇게도 유명하다는 공연을 꼭 서울에서만 하는지.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여히 서울 가서 옆집 마실 가듯이 느긋하게 걸어서 공연장을 찾아가 우아하게 폼 잡고 앉아 그 모든 것을 즐길 것이야.'

 

그것만이 내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고상하고도 품위 있으면서도 한없이 철없는 소녀의 꿈이었지요.

 

삼십여 년 전 어느 여름 날, 드디어 서울로 입성을 했습니다. 그렇게도 그리던 서울살이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비바람과 폭풍우 속을 내달리는 연속이었습니다. 허리를 동이고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서울 가서 날이면 날마다 보고 즐기며 행복하리라 여기던 멋진 공연들은 TV 중계로만 열심히 봤습니다. 

 

세월은 나를 데리고 속절 없이 흘러 서울 입성한 지 어느덧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몇 주 전 손바닥만한 텃밭 하나를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호미를 들고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밭에 올라가 김을 메던 첫날, 세상을 다 가진 듯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비로소 이것이 내가 찾던 행복이구나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음악회? 뮤지컬? 연극? 전시회? 그 예술의 묘미가 주는 행복도 비길 것이 없을 터이지만, 호미를 들고 밭고랑에 퍼질러 앉아 새벽바람을 맞은 행복에 비할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을 듯 싶었습니다.

 

촌년이 서울 오면 온갖 문화행사에 칠랑팔랑 흔들고 다니면 행복이 가슴을 가득 채워줄 줄 알았지만, 사실 저 가슴 밑바닥에는 어릴 적 코흘리며 맡았던 그 흙내음이 내 행복의 가장 깊은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어쩌면 '저 포도는 신포도일 거야'라고 혼잣말을 하며 뒤돌아서는 여우와 같은 독백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척에서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갈 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지만, 기십만원에서 몇 만원까지 하는 입장료가 사실 더 내 발목을 잡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이 영차! 있는 힘을 다 해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세기의 유명한 성악가의 노래인들, 그 어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인들 이보다 더 내 가슴에 전율을 일으켜 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2008.05.06 14:11ⓒ 2008 OhmyNews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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