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점의 진열대에 놓인 쇠고기. 미국의 일반 상점에서 뼈가 붙은 쇠고기를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강인규
한국 정부의 미국 쇠고기 완전 개방에 대해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문제를 '정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다. 그는 또한 국민들에게 '실상을 정확히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글은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와 궤를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정치 논리를 배제한 채 국민들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어느 정당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며, 문제의 진원지인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일부 언론은 '교포들도 안심하고 먹는 쇠고기를 두고 왜 난리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미국 쇠고기를 결코 안심하고 먹지 않으며, 내 주위 미국인들 가운데 다수는 쇠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물론 쇠고기를 거부감 없이 먹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에서는 원하면 쇠고기를 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에서도 소뼈로 육수 만든다? 그 식당 폐업하겠네한국인들에게는 소뼈를 고아먹는 식습관이 있어 미국 소비자보다 위험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미국에서도 소뼈를 우려낸 육수를 수프와 소스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한다."
그러나 만일 미국 식당이 고객이 원하지 않는데 잡뼈를 끓여 만든 싸구려 양념인 '쇠고기 스톡'을 마음대로 집어넣는다면 그 식당은 거액의 소송을 당하고 폐업할 위기에 처할 것이다.
몇년 전 맥도널드는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고 감자튀김에 쇠고기 추출물로 만든 향신료를 썼다가 엄청난 사회적 비판과 막대한 금액의 소송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식당과 식음료업계는 증가하는 채식주의자들과 유대인이나 무슬림처럼 종교상의 이유로 육류를 피하거나 선별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을 위해 엄격한 첨가물 표시 의무를 지닌다. 음식·라면·조미료·과자에 육류 추출물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한국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게다가 쇠고기에 관한 미국인들의 식습관은 전혀 다르다. 미국인들이 '티본 스테이크'를 제외하고 뼈가 붙은 쇠고기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뼈가 붙은 쇠고기를 식료품점에서 사고 싶어도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곳이 미국이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갈비를 사려면 한국·중국 식료품점에 가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갈비와 꼬리를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시장에서 수요가 없는 부위를 팔수록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제발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실상을 제대로 알리도록 하자.
'육회수공정' 가공육과 '분쇄육'... 미국에선 "고기도 아니다"는 주장까지정부는 '실상을 제대로 알라'고 말하면서도 협상문도 공개하지 않다가 5일에야 공개했다. 그 전에 이미 구글에서 단어 몇 개만 치면 찾을 수 있는 문서를 말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한미 협의문에는 한국 쪽 협상 대표인 민동석과 미국 쪽 엘런 터프스트라의 친필서명이 들어 있으며, 매 페이지마다 두 사람의 영문 이니셜(성과 이름의 첫 글자)도 적혀 있다.
보통 계약서의 이니셜은 각 페이지에서 합의한 내용을 당사자가 숙지하고 확인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내용을 확인해 보면 한국 협상단이 미국의 요구 내용을 제대로 이해나 하고 서명했는지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