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가 '청계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발등 찧고 싶었다"던 고 박경리 선생... 청와대 강연 끝내 성사 못돼

등록 2008.05.06 18:07수정 2008.05.0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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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경리씨가 타계한 5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씨가 타계한 5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연합뉴스
소설가 박경리씨가 타계한 5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5일 타계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故) 박경리씨 빈소에는 밤새 조문객이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도 6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영안실에 도착한 이 대통령은 곧바로 고인의 영정에 헌화한 뒤 분향, 묵념을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고인의 영정 옆에 금관문화훈장을 내려놓았다.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이 대통령은 유가족 등과 얘기를 나누며 "안타깝다, 이번에 뵈면 폐암 수술을 받으시라고 권유하려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동관 대변인에 따르면 고인은 당초 지난 3월26일 청와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오찬 강연회 첫 번째 강사로 초빙됐었고, 이 때문에 이틀 전인 24일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사전 면담도 했다. 이 때 고인은 "강원도 원주 집에서 이 대통령에게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다"면서 "이제 청와대에서 점심을 얻어먹을 차례"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고인이 갑작스러운 식중독으로 입원하면서 강연회가 4월8일로 연기됐고, 이후 폐암이 악화되면서 다시 입원하는 바람에 강연은 무산됐다. 당시 이 강연회에는 이 대통령도 참석하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고인이 폐암 수술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수술을 받으시라'고 적극 권유할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거북선을 복원해 (고인의 고향인) 통영에 기증했는데, 고인이 이를 고맙게 생각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귀띔했다.

 

청계천과 대운하에 얽힌 두 사람의 또 다른 일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3월20일 오전 대전시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보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3월20일 오전 대전시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보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박창기
이명박 대통령. 사진은 지난 3월20일 오전 대전시 한국원자력 연구원에서 열린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보고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박창기

그러나 이 대통령과 고 박경리씨 사이의 일화는 이동관 대변인이 전한 게 전부가 아니다.

 

26년 동안 집필한 <토지>를 비롯해 고인의 여러 작품 속에는 생명의 존엄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생명사상이 곳곳에 녹여져있다. 인간, 생명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문학 이외에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사회활동으로 이어졌다. 사회단체의 대표직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그가 1993년 환경운동연합 출범 당시 공동대표를 맡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청계천 복원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도 그였다. 지난 2000년 청계천 복원을 주장하는 학자들(청계천살리기연구회)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고, 2002년 1월에는 <한겨레>를 통해 '아스팔트 속에 갇혀 있던 청계천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고인의 구상은 구체화됐다. 그러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구' 공사는 그가 말한 '복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인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구 공사가 개발 위주로 흘러가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고 절규했다.

 

고인은 또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지금 시가 벌이고 있는 청계천 복원공사는 조경만 강조했을 뿐이고 역사복원과는 거리가 멀다"며 이 시장의 청계천 복구 사업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당시 이 시장은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의 기고문에 대해 "박경리 선생이 (직접) 쓴 것 같지도 않더라"며 "요즘 신문에 기사 나는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나"라고 폄훼했다. 그날 밤 서울시측의 요청으로 이 시장의 인터뷰 내용 중 고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삭제됐다.

 

<한겨레>에 따르면 당시 이 시장의 말을 전해들은 고인은 "말 같지 않은 소리라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고, 고인의 가족들 역시 "평생 글을 쓰며 살아온 원로작가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모욕"이라며 "이 시장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으로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불쾌해 했다고 한다.

 

"훈장 추서 거부가 고인의 명예 지키는 것이다"

 

작가 박경리
작가 박경리나남출판사
▲ 작가 박경리 ⓒ 나남출판사

당시 이 시장은 또 인터넷 사이트의 '네티즌 설문조사'에서 압도적 다수가 문화재 복원을 외면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계획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아닌 네티즌이 신문에 난 것만 봐서 그런 것이고, (시민의) 80~90% 이상이 서울시 안에 동의한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돼 뒤로 물러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경리씨의 일화는 '청계천'에서 '한반도 대운하'로 이어졌다. 박씨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강 바닥에 콘크리트를 깔고 산을 뚫는 운하 건설은 절대 반대다, 우리 강산이 만신창이가 될 거다"며 "예전에는 내 고향 통영도 기선이 물건을 실어 날랐다, 지금은 육로로 다 다니는데 이제 와 운하건설은 시대착오적이다"고 맹비판했다.

 

박경리씨의 타계소식에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을 추서하겠다고 밝혔고, 실제 이 대통령은 6일 고인의 영정 옆에 훈장을 놓았다. 그러나 청계천과 한반도 대운하에 얽힌 이 대통령과 박경리씨의 일화를 상기해 낸 네티즌 사이에서 반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훈장을 줄 자격이 없다', '훈장 추서를 거부하는 것이 고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등의 주장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과 연계돼 이러한 의견들이 빠른 속도로 네티즌 사이에 퍼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다시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돼 뒤로 물러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만약 고인이 생의 마감을 조금만 뒤로 늦춰서 예정대로 청와대 강연회를 할 수 있었다면, 이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이는 이유다.

2008.05.06 18:07ⓒ 2008 OhmyNews
#이명박 대통령 #박경리 #청계천 #한반도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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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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