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와 이명박 정부

실용의 함정

등록 2008.05.12 11:25수정 2008.05.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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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실용' 또는 '실용주의'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 증폭된 일이지만, 그 논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 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실용(pragma)'이나 '실용주의'는 원래 퍼스(C.S. Peirce)의 사상에서 시작하여 제임스, 듀이, 콰인, 로티 등의 이론가로 이어지면서 다듬어진 것이다. 모든 관념, 이론, 사상, 이념 등은 실제 현실에서 유용한 결과로 나타날 때 진리로서 가치를 지닌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실용주의는 그렇게 이념, 이론, 관념, 논리 또는 명분 등을 넘어 실천으로서 진리를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실용'은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는 언제나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성과를 베풀며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실용주의는 양날의 칼과 같고, 옥석을 가리지 않은 광물질과도 같다. 그 자체로서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기 힘들다. 실용의 토대와 조건 그리고 목적과 방법에 따라 다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는 실용의 가치가 당사자 모두에게 공통으로 전제되고 그에 우선하는 부정적 가치가 없거나 상충하지 않을 때만 의미 있는 철학이 된다. 현실에서 그런 토대와 조건이 저절로 갖추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목적과 방법이 항상 타당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한계를 지닌다. 특히 실용주의는 본원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한계를 지닌다.

첫째는 기존 조건에 내재하는 모순을 해소하거나 구조 자체를 변혁하는 일에는 소극적이면서 기능적 실용으로 환원하기 쉽다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그 철학의 성격 자체가 기능적 방법론의 성격을 담고 있어서 모든 이념이나 체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종속할 가능성이 더 높다.

주어진 토대 위에서 그에 순응할 뿐 그 한계를 뛰어 넘지는 못한다. 토대에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악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독재 체제에서 실용주의는 독재 체제를 더 강화시키는 데에 악용되고, 독점자본주의 토대에서는 독점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 환경에서는 신자유주의 강화에 봉사한다.


둘째는 현실 속에서 '실용'의 기준과 판단이 객관적이거나 엄정하지 못하여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진리의 논증이 담보되는 조건에서는 본래의 취지가 쉽게 발휘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어려움이 있다.

현실은 진리의 검증에서 학술적 논증과 같은 과학적 절차를 담보하지 않는다. 실용주의는 현실에서 다분히 자의적 조건을 형성한다. 유용성의 판단이 자의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로 인해 실용의 토대가 왜곡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그것의 실용성을 과학적 절차에 따라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여과하기 힘들고, 대신에 추진 주체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 또는 정략적 접근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서 왜곡의 위험이 상존한다.

결국 현실에서 실용주의는 원천적으로 왜곡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유용성은 본능에 따라 이기적으로 정향되기 쉽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권력 관계에 종속하는 경향이 있다. 지배 계급을 위한 지배 권력의 담론으로 변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실용주의' 정책은 추진 주체의 진정성이 강력하게 담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통제 장치들이 중층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만일 실용주의가 진정성을 상실하고 자의적인 '무기'로 악용되는 경우에는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렇다면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에는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으며 얼마나 검증과 통제의 장치가 연동되어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답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앞에서 이야기한 위험성들이 현 정부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실용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거나 해소하는 일보다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한다. 현 정부의 실용주의는 사회적 토대에 침윤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적극 봉사하는 쪽으로 정향되고 있다. 위장된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현실의 모순에 눈감고 순응하는 기제로 작용하며 특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천적 수월성에 주로 봉사한다.

둘째로 실용에 대한 잣대와 판단이 자의적으로 농단된다. 어떤 정책이 실용적 정책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실용적 방법이며, 어떤 것이 실용적 결과라는 판단을 자의적으로 내리며 독단을 부린다. 국정운영에서 모든 토론과 검증의 절차나 비판들을 거부하거나 우회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이나 견제를 회피하며 아무렇게나 밀어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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