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의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서평]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등록 2008.05.14 10:31수정 2008.05.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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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겉그림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겉그림시대의 창
▲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겉그림 ⓒ 시대의 창

때가 때이니만큼, 미 쇠고기 광우병 논란이라든가 한미FTA와 같은 '이슈'들을 한 번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분야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를 뒤흔들고도 남을 만한 일이며 상황에 따라선 전 세계가 동시에 떠들썩해질 수 있는 사안들이다.

 

눈에 띄는 곳에서 '사고'를 치는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야금야금 아니 너무 거대한 걸음걸이로 움직이는 이들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 짚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절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를 누비며 이익을 취하는 다국적 기업들. 심지어 우리 밥상에서조차 이익을 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다국적 기업들. 이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서나 보던 교묘한 전략을 곳곳에서 재현하고 있다. 그건 바로 '의존성을 키우는 것'이다. 오랜 식민주의가 가져오는 폐해인 '의.존.성'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캐나다 농업 기업에 관한 주요 분석가이자 비평가인 브루스터 닌이 오랫동안 주목해 온 다국적 곡물기업이자 '보이지않는 거인'(원제: Invisible Giant)의 상징인 카길같은 회사가 그 대표주자가 아닌가 싶다.

 

의존성, 식민화 되는 지름길

 

"카길은 '세계적 규모로 비교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서구 경제학의 고전적인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한국은 주요 곡물과 식물성 기름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축의 사료까지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오로지 집약적인 채소 경작과 가금농사에만 매달려야 한다. 국산 쌀로 밥을 지어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산업화된 식량경제 체제에서는 그런 낭만주의를 허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한국판 서문, 7)

 

누구를 위한 대량생산이며 누구를 위한 경쟁이며 또 누구를 위한 이익추구일까? 농부는 농부 대로 식품회사들은 식품회사들 대로 그리고 개인(소비자)은 개인 대로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공급하는' 기업이 되려는 카길 같은 다국적 곡물기업들에 의해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곤 한다.

 

'돈 버는 단체'의 대명사인 기업은 언제나 돈의 흐름을 주시하며 돈이 굴러다닐 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또한, 지나치게 덩치가 큰 기업은 그 덩치를 유지하기 위한 토대를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마치 맞는 옷이 없으면 만들어서 입어야 하는 것과 같다.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는 눈덩이와도 같다. 지나치게 덩치가 크다는 건 그만큼 '유지비'가 많이 드는 일이며 그것이 돈과 관련된 일일 경우 항상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법과 원칙을 기반으로 활동해야 하는 사회에서 덩치 큰 기업은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 '자유영역'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부 정책을 농단하는 고단수 로비'(4장)를 펼치는 것 기본이며 '일용품으로서의 금융거래'(8장)처럼 안정된 돈놀이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길과 같은 다국적 곡물기업은 기업 특성에 맞게 '종자를 지배하는 자가 농업을 지배한다'(17장)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농업, 식량, 곡물과 관계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끼어든다. 과거 우리나라가 '구호'라는 미명 아래 미국의 식량 정책에 노출된 이래 지금껏 다양한 영역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카길과 같은 기업에게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다. 세계 무역 구조가 '세계 시장' 구조로 가는 것과 별도로 카길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반드시 '세계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고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테니 말이다.

 

한국, 식민화를 부르는 위험한 짓을 자초하진 않는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태평양의 지배 세력으로 떠오랐고 일본과 한국, 대만은 북미의 군대와 북미 식품에 점령당하면서 '미국 식량 침략'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의 피해자가되었다. ... (중략) ...

이러한 식품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는 가장 뻔한 희생자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농업과 농촌 사회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일본과 대만, 한국을 식품과 사료 시장으로만 간주해온 카길 등의 미국 기반 TNC들에게 단 한 번도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 식품과 가축 사료의 주요 공급업자 중 하나인 카길은 이러한 형태의 제국주의의 대리자이다 수혜자가 되어왔다."(같은 책, 300)

 

묵직한 돈이 흘러다니고 기업의 핵심산업에 '선한 영향'을 끼칠 일이라면 무엇이든 끼어들 다국적 기업 카길은 소금산업에도 손을 댄 바 있다. 곡물기업 카길은 왜 소금에도 손을 댔던 것일까. 그건 바로 소금이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하며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인데다가 대량취급 물품에 이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전 세계 누구나 이용하는 필수품이고 다량으로 취급하기 쉬운 소금과 같은 제품은 카길같은 기업에게 눈에 띄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이를 이용하여 기존 시장의 소비자 범위를 확대할 수 있고 새로운 소비자 영역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더 많이 확보한 소비자들을 곡물유통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엄청난 수의 가공시설, 유통시설, 이동설비들을 계속 굴려야하는 기업이 다량으로 취급하기 쉽고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소금산업에서 '노다지' 냄새를 맡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방위 사업 방식이 우리 밥상에서조차 무법 행위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가 카길과 같은 다국적 곡물기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짚어보면, 그들의 목표가 결코 '식민지 주민'의 건강과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데서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당장 우리의 목을 옥죌 일인 동시에 결코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식량 부분에 자국 정부의 영향과 감시도 제대로 받지 않는 다국적 기업을 끌어들인다는 건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무역 확대와 신자유주의라는 무서운 파도 아래서 우리는 우리나라 주력상품(전자, 자동차 등등)과 식량을 '주고 받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앞서 말한 미 쇠고기 광우병 논란 사태와 한미FTA문제는 다 이런 상황과 맞물린다. 과거가 된 지 오래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망령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고 있는 시대가 바로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이다.

 

거듭 말하건대, 거대 기업, 다국적 기업, 곡물 기업에 우리가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 특유의 의존성 위험도에 있다. 이번 미 쇠고기 광우병 논란 사태에서 보듯, 국민 건강과 주권을 담보로 한 거래에 식량(산업)을 '미끼'라도 되는양 이용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느덧 스스로 21세기 식민화의 덫에 빠져들지 모른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카길의 내부를 속속 들여다 볼 것까지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가) 식량주권을 '주고 받는 물품' 정도로 취급하고 거래상품 중 한 가지로 다루는 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스스로 의존성을 키워가게 될 것이며 '식민지 주민'의 지위를 누리게(?!) 될 게다. 마지막으로, 선물은 아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의미있는 선물이 될지 모를 지은이의 경고를 다시 던져본다.

 

"'의존성을 키우는 것'은 식민 지배자가 식민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이익을 얻고자 사용한 아주 오래된 식민주의적 관행이다. 나는 잡종 종자를, 그것의 생산과 관련된 모든 관계를 내부에 담고 있는 주머니에 비유한 적이 있다(저자의 < The Rape of Canola > 참고). 카길이 인도에서 추진한 활동을 살펴보면, 카길이라는 식민화 군대에서 종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려보기란 어렵지 않다. 식민지 점령군이 되어 지배자의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곳 농민에게 일용 농산품을 생산하도록 지시한 다음, 생산된 일용품을 거두어(혹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 가공한 후 그것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식민지 주민에게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같은 책, 398)

덧붙이는 글 |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브루스터 닌 지음. 안진환 옮김. 시대의 창, 2004.
(원제) Invisible Giant by Brewster Kneen (1995, 2003)

2008.05.14 10:31ⓒ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브루스터 닌 지음. 안진환 옮김. 시대의 창, 2004.
(원제) Invisible Giant by Brewster Kneen (1995, 2003)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 식량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카길’의 음모를 파헤친다!, 한국판 보론 증보 개정판

브루스터 닌 지음, 안진환 옮김,
시대의창, 2008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브루스터 닌 #식량 #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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