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학원가"사설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상가. 입주 업체의 상당수가 사설 학원이다.(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신향식
급우들끼리도 실력에 따라 교실을 옮겨 수업을 받다보니 서먹서먹하고 예전 같은 동료의식은 느끼기 힘들다. 이제 고교 2학년인데 이 정도면 3학년에 진학하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흔히 하는 말로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게 김양의 심정이다.
이상의 스토리는 실제로 우리 고교 교육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학교는 말그대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입시 정글'로 변했다. 한때 금지됐던 0교시 수업은 각 학교마다 경쟁적으로 재개되고 있고, 사설학원 강사들이 교단에서 교사들의 가르침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최근 경기도 김포의 한 고등학교는 방과후 학교 운영을 놓고 사설학원과 검은 뒷거래를 했다가 들통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포 경실련 등 6개 시민단체회원 500여 명은 최근 방과후 학교 비리 운영에 대한 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학교 측이 사설학원에 방과후 교실 운영권을 넘겨주며 검은 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김포 시민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비리의혹을 방조한 학교 관리자와 학교운영회의 책임이 크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했다.
이적 김포 경실련 공동대표는 "미래를 위한 교육은 투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깨끗해야 할 학교가 비리로 얼룩져서야 되겠냐"며 "가진 집 자녀와 없는 집 자녀를 구별하고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학교 자율화 정책은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뿐만이 아니다. 마산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교육전문업체와 기부체납 형식의 계약을 통해 학교 안에 영어교실을 짓거나 지을 계획으로 알려져 '학교 내 학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설학원의 교실 점령과 입시지옥를 향한 무한경쟁에 대해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아이들이 얼마나 더 비명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이런 밀어붙이기식 정책들이 수정될까 걱정이 앞선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정 위원장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4월 학교 자율화조치 실시 한 달 전부터 유명 사설학원 강사들을 한 달에 600만원씩 주고 교실에 불러다 방과후 수업을 한 학교도 있다. 실제로 이 사설 학원의 매출은 작년에 비해 약 60%가 증가했다고 한다. 학교 자율화 정책이 아니라 '학원 배불리기 정책'이란 설명이다.
학교는 학교대로 0교시 수업이니, 야간 자율학습이니 하는 명목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일부 학생들을 밤 12시까지 학교에 붙잡아 놓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학생들은 최소한의 건강권마저도 무자비한 쥐어짜내기식 교육정책에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 위원장은 이처럼 교실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살인적인 학교자율화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19일째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다 급기야 13일 오전 탈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같은 날 전국이 동시에 같은 문제지의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도 난리다. 올해 3월부터 교육부가 전국 초중학교 일제고사 부활을 전격 결정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역시나 사교육업체들과 학습지 시장만 신바람이 났다. 발빠르게 나선 한 사교육업체가 실시한 전국 학력평가 대비 모의고사에는 한 학생당 시험비용 2만원씩을 받는데도 무려 6천명이 응시했다.
한 유력 일간지도 사교육업체와 손잡고 모의고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역할을 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망각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울 시내 서점에서는 10여 개 학습지 업체가 내놓은 <중 1 진단평가 대비 문제집>이 8천원~1만원의 제법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같은 공교육 포기와 입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정부 교육정책에 대해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김혜영 중앙대 교수(영어교육과)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 자율화 정책 점검 간담회에서 "교육에 자본주의 경쟁논리나 상업화를 끌어들여서는 안 됨에도 4·15학교 자율화 계획은 이런 교육본질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다"며 "정책 집행의 순서가 잘못됐고, 속도와 일관성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정부가 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이 사교육을 안고 가겠다며 결정한 방과후 자율화 정책이 오히려 도시와 농촌 간, 또는 계층 간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곧, 학교에서 사교육을 진행하면 소위 잘 나가는 일류강사들이 수강료를 넉넉히 지급하지 못하고 근무여건도 열악한 농어촌 학교에서 강의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도권의 학교들은 학원 강사가 진행하는 방과후 수업에 학생 1인당 50만원의 수강료를 걷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유명 강사들은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으로 몰리고 나머지 강사들이 농어촌 학교로 가게 돼 소외지역 학생들은 수준 낮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교육현장의 붕괴에 대해 정부의 인식은 안이하기만 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우형식 제1차관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대해 "학교가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학교운영에 관한 권한을 학교장 등 학교 구성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며 "교육 관련 규제를 철폐하여 교육의 자율과 자치에 밑바탕을 마련하고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유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 담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밑에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인사들이 실제 아비규환의 교육 현장을 목격하고 몸으로 겪어본다면 위의 속편한 얘기를 반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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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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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학교자율화정책' 입시지옥 무한경쟁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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