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서명에 동참하였습니다. 칠순의 제 어머니께서도 서명을 해야겠다며 가입만 하고 한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포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어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통령께서 탄핵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습니다. 물론 선출되기 전부터 탐탁하지 않게 생각해 오던 터이지만, 제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대한민국에 엄청난 손실과 퇴보를 가져올 것이 뻔한 불행한 사태를 넌지시 기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틈이 날 적마다 반복하는 지난 (잃어버린) 10년동안, 지역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무조건 딴죽걸기와 발목잡기를 일삼던 세력이 저질렀던 과오가 되풀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제 맘에 차지 않는 집권세력이지만 가급적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최근 쇠고기 수입재개를 둘러싼 제 느낌을 전하고자 합니다.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은 ‘예방→관리→대책(재발 방지)’의 절차를 따를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다가오지 않게 막기 위한 방책을 세우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피며, 만에 하나 그 위험이 다가왔을 때는 대응을 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시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일련의 절차를 매뉴얼(Manual)이라는 표현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번에 합의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을 보면 이러한 ‘예방’, ‘관리’, ‘대책’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규정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이미 전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는 바와 같이 위험한 연령대의 고기 및 위험한 부위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으며, 그나마 약간의 규제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를 관리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으며, 더군다나 실제 위험이 발생하였을 때에도 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협상이란 서로 밀고 당기며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내세운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자신들을 '광우병에 대해 통제된 위험국(Controlled BSE Risk Country)'로 분류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OIE의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미국이 ‘통제된(Controlled)’ 상태임을 공인받은 것을 주장하였다면 우리는 그래도 아직 ‘위험국(Risk Country)'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것을 내세웠어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노력을 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현상황에서 무조건 믿으라고 강변을 하십니다. 어찌 믿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어찌되었건 당신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선출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당신을 선택한 사람들은 당신께 그러한 믿음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에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정보’에 의해서 현혹되고 있다는 판단은 거두시기 바랍니다.
제 개인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며 한미 FTA체결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필요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위생조건 협상이 대통령이 방미를 앞두고 매우 졸속하게 이뤄졌다는 사실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항구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처럼 이번 협상이 대통령 방미와는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강변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적 바탕에 대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한 후에 현재의 사태에 대한 해결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재개를 전제한 가운데 새로운 협상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통제를 벗어난 위험(Risk beyond the Control)’을 상호 동등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예방’하고,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 있는 협의가 새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책을 우리가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방법과 권한조차도 이번 합의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협상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재협상’을 제외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지만 다른 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국민들이 아니라 미합중국의 정부입니다. 그들에게 국민들의 의지를 전하고 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의해 국민들은 당신께 그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다행히 요 며칠 대통령께서는 ‘소통’을 주장하십니다. 진정 ‘소통’을 원하신다면 걸림돌을 치워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가야할 길이 창창한데 그깟 쇠고기가 우리의 소통을 방해해서야 되겠습니까? 만약 이 글이 실리게 된다면 저의 벗들은 제게 유치하고 순진한 발상이라며 “이 정권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냐?”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순진한 기대를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1744일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2008.05.16 15:4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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