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지어준 이름인 '위문'을 아직도 달고 있다.
이정혜
위 사진은 북한산성의 13개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문이다. 이 문의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었다. 이 성의 축조 과정을 기록한 조선시대 스님 성능의 <북한지>를 보면 이 문의 이름이 '백운봉암문'으로 명백히 기록돼있다.
최근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 600년사>에도 이 문의 이름이 '백운봉암문'으로 명시돼있다. 그러나 이 문의 현판은 '백운봉암문'이 아닌, 위의 사진에서 보듯 '위문(衛門)'이라 적혀있다.
1937년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발간한 <북한산:경전하이킹코스>(北漢山:京電ハイキングコ-ス)에서 최초로 '위문'이 발견되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백운봉암문은 일제시대 때 그 이름이 바뀐 것이다. '위문'이 일제잔재라는 것은 이미 2004년 <오마이뉴스>의 김남용 기자가
'매국의 문, '위문'을 걷어치워라!' 란 기사로 증명하기도 했다.
결국 일제 잔재를 갖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역사도시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관리 당국 관계자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더욱 큰 문제는 역사를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산을 한 해 1000만 명이나 찾는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다. 그 중 몇 명이나 위문의 정식 명칭이 백운봉암문이라는 사실을 알겠는가.
현판을 바꾸지 않아 그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역사를 배우도록 방치해 놓고 있는 것이다. 주말이면 북한산성에 오른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 역시 백운봉암문을 일제가 지어준 이름인 위문으로 알고 갈 것 생각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2의 숭례문'은 없어야 하는데...문화재를 복원하는 데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러나 낙서가 늘지 않도록 방책을 세우고, 현판이 잘못 됐는지 아닌지 확인해서 고치는 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매년 논란이 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에 쓰인 돈만 모아도,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 걷어내고 새로 설치하는 비용만 합해도, 북한산성에 울타리와 제대로 된 현판쯤은 만들고도 남으련만….
숭례문 화재 당시에만 철저히 문화재를 보존하겠다고 말로만 외쳤을 분 정작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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