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산곡동 맨해튼거리'라 불렀어요"

[30년 부평지킴이] 산곡동 경충철물건재 김진성씨

등록 2008.05.26 15:15수정 2008.05.2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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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동 맨해튼거리 저 골목에서 수 천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테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오른쪽 담장 넘어엔 산곡초등학교가 있다.
산곡동 맨해튼거리저 골목에서 수 천명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테지만, 지금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오른쪽 담장 넘어엔 산곡초등학교가 있다.김갑봉
뉴욕 맨해튼은 동서남북으로 뻗은 도로로 구획되고 브로드웨이가 대각선을 이루며 통하고 있다. 증권거래소가 있는 월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상업중심지의 마천루군, 예술가가 많은 그리니치빌리지, 센트럴파크, 그리고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컬럼비아대학교, 그 밖에 여러 문화·교육시설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에는 '맨해튼거리'라고 불렸던 곳이 있단다. 부평에서 가장 많은 금융·문화·의료 등의 시설이 집중된 곳은 부평역 일대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산곡동 맨해튼거리는 어딜 두고 하는 말일까? 뉴욕의 맨해튼처럼 문화·교육·의료·행정 시설 등이 길을 따라 집중돼 있는 그곳을 찾아 산곡동으로 가봤다.

1972년에 문을 연 철물점

이번 '30년 부평 지킴이'의 주인공은 산곡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성(43)씨다. 산곡동 맨해튼거리라 부른 것도 그다. 그는 1972년 문을 연 지금의 가게에서 나고 자라 바로 앞 산곡초등학교를 다녔고,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김씨가 맨해튼거리라 부른 곳은 바로 자기네 가게 앞을 말한다.

"지금은 산곡1동이 어찌 보면 부평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잖아요.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적엔 안 그랬거든요. 산곡초 27회 졸업생인데, 당시 한 학년당 12학급씩 50명 정도 다닐 정도였죠. 수천 명의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으니, 아이들이 학교 가면 동네가 조용했고 학교가 파하면 온 동네가 시끌벅적 했어요."

김씨는 웃으며 말을 더 이었다.


경충철물점 72년 문을 연 산곡동 '경충철물점', 김진성(43)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가업을 잇고 있다. 나이도 제법 들었지만 동네 어른들은 여전히 김 씨를 어릴적 이름 부르듯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경충철물점72년 문을 연 산곡동 '경충철물점', 김진성(43)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가업을 잇고 있다. 나이도 제법 들었지만 동네 어른들은 여전히 김 씨를 어릴적 이름 부르듯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김갑봉
"지금의 금호아파트 자리는 전남방직, 대우아파트는 동양철관, 한화아파트는 한국베어링(한국종합기계), 현대5차는 신한제분 등 지금의 아파트 일대가 모두 공장 내지는 군부대 자리였죠. 나머지는 논밭이라 주택가는 지금 산곡1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동사무소가 바로 앞에 있고, 새마을금고가 바로 옆에, 조금만 내려가면 학교, 옆으로 들어가면 장사진을 이루던 백마장 시장(산곡시장), 또 그 안에 백마장 극장이 있었으니 이 정도면 산곡동의 맨해튼거리 아니겠어요?"

산곡동 맨해튼거리는 사실 김씨의 추억 속에 있는 거리다. 나름의 재미를 줬던 극장도 사라졌고, 공장에서 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들의 장바구니를 넉넉하게 했던 산곡시장도 몇 년 전 대형마트(옛 한화마트, 지금은 롯데마트)가 들어서며 이젠 일부만 남았다. 이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산곡초등학교와 동주민센터(옛 동사무소), 앙상한 뼈대만 남은 극장 건물, 몇몇 상가 건물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씨네 경충철물점이다.


김씨는 대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다. 그가 철물점을 이어받은 것은 18년 전이다. 그의 선친인 김주언씨가 이 자리에 철물점을 열었고, 4년 전 돌아가신 김씨의 어머니 김정애씨가 한동안 뒤를 이어 운영했다.

대를 이어 산곡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백마장 극장 이 곳이 극장이었음을 증명해 보이듯 아직 외벽에는 극장의 흔적이 남았다. 산곡(백마장) 시장 안에 위치한 이 극장의 이름은 일제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백마장 극장이 곳이 극장이었음을 증명해 보이듯 아직 외벽에는 극장의 흔적이 남았다. 산곡(백마장) 시장 안에 위치한 이 극장의 이름은 일제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김갑봉

"내가 철물점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지금 살아계시면 아흔 둘 정도신데. 일찍 떠났어요. 그때는 내가 어릴 때라 어머니가 철물점을 운영했어요. 그러다 스물다섯에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셈이죠. 어머니가 워낙 강직한 분이셨어요. 지금 건물이 3층인데 사실 이건 어머님의 작품입니다. 철물만 취급하는 게 아니라 건설 자재까지 취급하던 터라 여자 몸으로 업자를 늘 상대해야 했으니 오죽했겠어요. 지금도 어머니 생각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저려옵니다."

연탄보일러 이른바 '산곡동 맨해튼거리'라 불리우는 산곡시장 안 쪽에 위치한 주택가. 집 밖에 설치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도심 속 연탄 보일러가  이채롭기만 하다.
연탄보일러이른바 '산곡동 맨해튼거리'라 불리우는 산곡시장 안 쪽에 위치한 주택가. 집 밖에 설치돼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도심 속 연탄 보일러가 이채롭기만 하다. 김갑봉
경충철물점. 없을 건 없고,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곳처럼 수천 가지의 물품들로 매장이 가득하다. 매장 한 켠 칠판에는 김씨가 써놓은 물품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채워야 할 물건들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정렬이 안 돼 있어 일반인이 봐서는 전혀 모를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갖춘 물건은 지우고 없는 것은 다시 기록해 두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철물점의 품목도 변했다.

"연탄보일러가 많았을 때는 방수통(구들장 밑에 물이 안 들어가도록 막는 통)이 최고 인기 품목이었죠. 펌프와 풍무도 많이 나갔고, 이후 백열등에서 형광등, 지금은 통신케이블에 이르기까지 철물점도 세월 따라 흘러가는 것 같아요."

경충철물점과 김씨는 산곡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오래되다 보니 사랑방처럼 들르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동네에 아직까지 고령층이 상당히 머물고 있어 이들에게는 큰길 건너편에 있는 대형마트 보다 철물점이 더 낫다. 아파트 단지와 달리 주택들이 많아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챙겨주는, 집안구석까지 알고 있는 김씨가 꼭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30년 부평지킴이 #경충철물건재 #산곡동 #산곡동 맨해튼거리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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