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들에게 갉아 먹힌 볏가마.
송성영
"찍찍이를 사와야겠어.""그것두 소용읎을 걸, 어떻게 이 너른 면적을 다 막을 수 있겠어. 작은 구멍만 있어도 파고 드는 놈들인디…."결국 아내가 궁여지책으로 볏 가마 주변에 '찍찍이'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찍찍이도 소용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양이 눈치 밥'으로 단련된 쥐새끼들인지라 아주 용의주도했습니다. 찍찍이를 용케도 피해 다녔습니다. 간혹 찍찍이에 쥐 털만 남길 뿐이었습니다.
사흘째,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볏 가마들을 사랑방 처마 밑에 딸린 작업실(바닥에 보일러나 온돌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여름에만 원고 쓰는 작업실로 사용하고 겨울에는 비워두고 있다)로 옮겼습니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작업실은 사랑방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쥐새끼들의 습격에 끄떡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도 소용없었습니다. 하루 밤 사이에 작업실 바닥은 온통 볏 가마에서 쏟아져 나온 나락들 투성이였습니다.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이 새끼들이 도대체 어디로 들어왔지…."작업실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훑었습니다. 작업실 벽 한쪽 면에 컴퓨터를 놓기 위해 나무판을 설치해 놓았는데 바로 그 밑구멍으로 침투해 들어왔던 것입니다. 흙벽 틈새에 구멍을 파고 그리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쥐새끼들에게 침투당한 흙벽 구멍에 찍찍이를 대고 판때기로 막았지만 그것도 소용없었습니다. 며칠 뒤 판때기 바로 옆에 다시 쥐구멍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거 참, 환장하것네."탄식만 나왔습니다. 그때 마침 동양화를 그리는 상성규 선생이 찾아와 내 하소연을 듣고 쥐약을 한 봉다리 사왔습니다. 상 선생 역시 쥐새끼들 극성에 견디지 못해 그 쥐약을 놓았는데 그 후로 쥐새끼들이 찍 소리도 내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쥐약 먹은 쥐새끼들이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질 않을까유? 여기저기 죽어 나자빠지고 끔찍하잖유.""한번 놔 봐요, 그런 일 없으니께."상 선생 말대로였습니다. 쥐들이 다니는 길목, 여기저기에 쥐약을 뿌려 놓았는데 그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쥐들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눈 씻고 찾아 봐도 쥐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 전 부터 다시 활개치기 시작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우연찮게도 우리 집에 다시 쥐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의 전쟁광 부시를 만나 광우병 위험이 높은 미국 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던 바로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미국 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 갔다가 팻말에 '쥐 명박'이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빗댄 문구였습니다. 쥐는 무엇인가를 갉아 먹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해 국민들의 건강을 갉아 먹으려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쥐는 양식을 갉아 먹지만 광우병은 사람을 뇌를 갉아 먹습니다. 광우병에 노출되어 있는 소들이 뭔 죄가 있겠습니까? 광우병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를 줄 모르는 아귀같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광우병 보다 더 위험한 것은 광우병을 발생시키고 그걸 들여와 자국민에게 먹이겠다는 인간들의 뇌입니다.
내 집에만 쥐가 사는 게 아니었네내친김에 쥐들에 관한 얘기를 좀 더 해 볼까 합니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쥐 잡는 날'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만큼 징그럽게 쥐들이 많았습니다. 어디 쥐들뿐이겠습니까. 국민들을 착취하고 억압하여 배를 불리던 친일매국노들 또한 쥐새끼들만큼이나 우글우글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쥐약을 나눠 주고 쥐꼬리를 잘라 오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쥐꼬리 대신 아궁이 재를 바른 오징어 다리를 땅바닥 놓고 발로 비벼 쥐꼬리라 속여 제출하다가 선생님한테 된통 얻어터지기도 했습니다.
쥐약 먹은 동네 개들이 속이 뒤틀려 미친 듯이 날뛰다가 아궁이 속에 쳐박혀 죽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쥐약을 많이 놓았습니다. 하지만 쥐새끼들은 여전히 활개치고 다녔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독재 정권때도 쥐새끼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쥐들이 얼마나 많았냐 하면 방안에서 잠자다가 동생이 쥐에게 코를 물렸을 정도였습니다.
가난한 우리 집의 그 쥐는 아마 훔쳐 먹을 만한 양식이 없자 잠든 동생의 콧물이라도 먹겠다고 달려들었던 모양입니다. 쥐가 어떻게 잠든 아이의 코를 물 수 있느냐, 믿기지 않는 얘기라 하겠지만 분명 사실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아직도 쥐 한데 코를 물린 동생 얘기를 합니다.
가난한 집안의 천장은 쥐들의 운동장이었고 집 곳곳은 쥐구멍 투성이었습니다. 부엌은 물론이고 방안에 까지 몰래 기어들어와 흔적을 남깁니다. 온 몸을 던져 민주화 운동을 하던 양심가들의 안방에 불쑥 불쑥 쳐들어와 군화발을 찍어 놓던 독재정권의 저들처럼 쥐새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다시 나타난 쥐새끼들, 임자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