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 장승업 화파전, 전시회를 알리는 글씨를 읽어달라고 합니다. 다행히 아는 글자만 있어 엄마 체면을 구기지 않았습니다.
정진영
성북동 언덕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봄·가을 전시회가 특별한 것은 전시장에 공개되는 고가의 작품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일본강점기에 10만석지기 대부호였던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의 배짱 두둑한 수집 이야기와 무료로 공개하는 연구 중심의 미술관 측 배려가 고맙기 때문입니다.
간송 전형필은 일본제국주의에 나라가 침탈 당하기 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고, 1910년대에 집안 남자들이 대부분 죽으면서 많은 돈을 상속 받았습니다.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면서 고문서를 보는 안목을 키웠고, 당대 조선 최고의 안목으로 꼽혔던 스승 오세창의 지도로 조선 서화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물려받은 재산을 약탈 당한 문화재 수집에 씁니다. '문화 독립군'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립니다.
그가 모은 작품 중에는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고려청자와 훈민정음 창제 해자 원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들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서울에 큰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었는데, 10채가 넘는 돈을 들여 고려청자를 낙찰받은 일화는 단순히 컬렉터의 탐욕으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비자금 조성 루트로 활용하는 대기업 사모님의 행태와 간송의 낙찰이 다른 까닭은 미술품을 수집한 다음의 행동이 설명해 줍니다.
간송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을 다른 상업 미술관에서 보게 된다면, 아마도 1만 원은 족히 받으면서 몇 점 되지도 않는 작품으로 대대적인 광고를 할 것입니다. 별도의 광고비를 쓰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장승업의 그림 40여 점을 비롯해 총 100여 점을 간격 50㎝ 남짓한 근거리에 빡빡하게 배치하면서도 무료로 공개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