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서울 태평로 덕수궁앞 도로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한 여고생이 시위 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살수차(물대포)를 혼자서 가로막고 있다.
권우성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의 선도적인 행동을 두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선언하는 분석, 문화제와 집회에 깔려있는 국가주의·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실패한 내각 구성과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민중의 저항이라는 평가까지.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하나를 추가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금의 촛불집회는 우리가 경험한 저항문화 중에서 가장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에 가깝다고 느낀다. 시민들이 상식적으로 택한 비폭력은 지금 가장 급진적인 실천으로 구성되고 있다.
필자가 함께 활동하는 평화주의 운동그룹은 '평화캠프'라는 행사를 몇 년간 진행해 왔다. 이 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비폭력 직접행동 트레이닝'이었다. 2004년에는 영국의 한 활동가를 초청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사람이 아닌 건물이나 차량을 훼손하는 것이 폭력인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스크럼을 짜야 연행되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실천 등에서 유래했고, 서구의 신사회운동에서 자주 활용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가장 큰 원칙은 '수단과 목적의 일치'라 할 수 있다. 즉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만큼이나 수단도 중요하며, 그렇기에 과정으로서의 비폭력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저항문화를, 집회방식을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했던 한국 평화운동 그룹에게는 매우 적절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익히긴 했지만 정작 실제 한국의 저항문화 속에서 이를 활용하거나 확산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다. 늘 아쉬워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를 둘러싼 시위를 경험하면서, 이미 사람들은 비폭력 직접행동을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요즘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 중 하나가 '비폭력'이다. 폭력을 꺼리는 것만으로도 '투쟁의 의지'가 없으며 타협적이라고 비판받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폭력'을 이렇게 구호로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외친 것은 전무한 일이 아닐까 한다.
몇몇 사람들이 흥분해서 전·의경에게 욕을 하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작은 막대기라도 들면 그 주위의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을 외친다. 밀고 당기면서 뺏은 방패들도 곧 돌려준다. "경찰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욕하거나 때리지 맙시다"라고 어떤 사람이 외치기도 한다.
막으면 돌아가고, 기다린다...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비폭력비폭력은 무저항이 아니다. 힘과 힘이 부딪칠 때는 힘이 센 쪽이 이긴다. 국가와 시민들이 힘으로 부딪칠 때에는 조직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폭력은 이 프레임을 깨보자는 것이다. 즉, 힘이 아닌 '도덕적 우위'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도덕적 우위를 잡고 늘어진다. 그게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이들은 거리에서 도덕적 우위를 자신의 힘으로 삼고자 결심한 듯 했다.
막으면 돌아간다. 보통 집회 행진이 막히면 선봉대를 꾸리든, 대오 전체가 밀고 당기든 뚫고 지나가는 것이 이전까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평범하게 생각한다.
청와대로 가자. 그런데 길이 막혔다. 그럼 돌아가자. 지난 토요일 집회에선 시청에서 집회를 한 사람들이 광화문이 막혀있자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로 돌아가서 청와대 앞으로 갔다. 경찰이 급하게 길목을 막아봤지만 대오는 한 발 빠르게 다 막지 못한 틈으로 지나갔다. 굳이 싸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