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자유선진당(선진당) 총재가 최근 '쇠고기 협상 대책회의'에서 했다는 말이다.
이 총재는 연일 광화문 네거리를 메우는 '한미 쇠고기 재협상' 촉구 촛불 물결을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성명이나 발표하고 있을 수는 없다"며 "필요하다면 청와대 앞 농성도, 촛불시위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사실상 '한미 쇠고기 협상'의 책임을 물어 내각의 인적 쇄신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에도 이 총재는 그 공을 '촛불의 힘'으로 돌렸다. "정치권이 아닌 광화문에 모인 시민의 힘이 이룬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적 제스처로 보일 수 있다"는 의원들의 만류로 촛불시위 참여는 보류됐지만, 이 총재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쇠고기 정국'에서 이 총재와 선진당의 행보가 주목 받고 있다. 유일한 보수야당으로서 보수정권의 편을 들지 않고 야당 공조에 적극 가담, 국민적 저항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당은 '한미 쇠고기 협상' 직후 야권에서 특별법 제정 주장이 나왔을 때 위헌성을 지적하며 '재협상론'을 제시해 의제를 이끌었다. 협정문이 공개됐을 때에도 미비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재협상만이 대안"이라고 선명한 입장을 취했다.
경찰이 촛불시위를 강경 진압해 물의를 빚자, 곧장 경찰청과 행정안전부를 찾아가 따진 것도 선진당이다.
작은 정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당내에 '한미쇠고기재협상대책특위'를 구성하기도 했다. '정통보수'를 자처하는 선진당이 이념적으로 정반대인 민주노동당과 '쇠고기 연대'를 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당직자들은 "쇠고기 정국에서 당의 대처방향을 이끌고 있는 건 이 총재"라고 입을 모은다. 이 총재는 매일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언론보도와 정부 발표를 꼼꼼히 챙긴다고 한다.
서툰 솜씨지만 젊은 당직자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민심의 흐름도 확인한다.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 생중계를 보기도 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와 누리꾼의 댓글도 꼬박꼬박 읽는다.
이 총재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에 당직자들도 놀란다. 한 고위 당직자는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검역주권을 지키는 데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게 총재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측근이 없는 것 같다"... 불쑥 청와대 가기도
3일 밤 이 총재가 "대통령을 만나야겠다"며 불쑥 청와대로 향한 이유도 단순하다. "대통령이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심정 때문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이 총재는 최근 들어 여러 번 "이명박 대통령이 이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 주위에 직언을 하는 이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박선영 대변인은 "이 총재가 3일 저녁 인천지역 재보선 지원유세를 마치고 당사로 돌아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자율규제' 발표 보도를 보고 '어떻게 저런 발표를 할 수가 있느냐. 안되겠다. 나라도 대통령을 만나 얘기를 해봐야겠다'며 '청와대로 가자'고 하시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총재는 이날 정 장관의 발표에 대해서도 "주권국가이기를 포기한 태도"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도 돈 내는 사람이 살까 말까를 결정하는 법인데 어떻게 국가 간의 협상에서 파는 사람(미국)한테 수출하지 말라고 애걸복걸 할 수가 있느냐"며 개탄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변인은 "이 총재의 청와대행에 대해 말이 많지만, 정작 총재는 체면도 따지지 않고 간 것"이라며 "오로지 '나라도 대통령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을 해야겠다'는 우국충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청와대로 가면서 입단속도 시켰다고 한다. 박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는 알려서 취재를 하게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의원도 있었지만, 이 총재는 '내가 정치적인 쇼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입막음을 시키더라"고 설명했다.
"소탐대실=소고기 탐하다 대통령직 잃는다(?)"
그러나 이 총재는 이날 밤 정작 청와대 안으로는 발도 들이지 못했다. 오후 8시 40분쯤 청와대 민원실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박재완 정무수석과도 자신이 타고 간 승합차 안에서 얘기를 나눴다.
동석했던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 총재는 박 수석이 "4일은 대통령이 오찬 약속이 있다. 하지만 오전 중으로 (면담) 일정을 잡아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하자, "대통령과 밥을 먹는 게 뭐가 중요하냐. 대접 받으려고 대통령 만나자는 게 아니다. 형식은 중요치 않으니 하루라도 빨리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대변인은 "그 이후로 청와대에서 어떤 연락도 없었다.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언론에 브리핑 하기 전에 전화라도 해서 배경 설명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박 대변인은 "요즘 청와대나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소통 부족' 정도가 아니라 '소통 불통'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소고기' 탐내다 대통령직까지 잃는 '소탐대실'하는 것 아닌가한다"고 꼬집었다.
"선진당 '쇠고기 공조' 평가할 만... 정체성 혼란 극복해야"
최근 이 총재의 행보에 이념상 정반대인 민주노동당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선진당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공동대응을 하면서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점은 높이 보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 총재에게는 앞으로 4년 반이 더 중요하다. '보수 정부 아래의 보수야당'이라는 이례적인 정치지형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선진당은 최근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문국현 대표가 이끄는 창조한국당과 손을 잡아 "정체성까지 버린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선진당이 최근 다른 야당들과 '쇠고기 공조'로 이슈를 이끈 점은 돋보였다"면서도 "보수야당으로서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오히려 '쇠고기 정국'을 이용해 살아남으려는 '정치 전략'으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이어 김 교수는 "쇠고기 정국 이전의 선진당의 행보는 '정체성 위기'라고 할 만큼 일관성이 없었지 않느냐"며 "충청당·이회창당이라는 비판을 뛰어 넘어 진정한 '정통보수 야당'으로 자리잡기 위한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8.06.05 11:08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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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청와대 간 이회창 "나도 촛불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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