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장.심양 황궁에 있는 연회장. 이곳에서 황실 연회가 베풀어졌다.
이정근
소현이 세자관을 출발했다. 빈객 박노와 무재 박종일은 물론 익위사 관원들이 호종했다. 안장을 갖추고 갑옷을 입힌 말 10마리도 끌고 갔다. 예물이다. 황궁에서 거행된 결혼식은 전쟁 중이라 검소했다. 식이 끝나고 여흥이 시작되었다. 만주족과 몽고족에 이어 조선족 여인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춤을 추었다. 조선에서 끌려온 궁중 무희들이었다.
소현은 조선족 무희들이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들의 춤사위가 접혀지고 꺾어지며 허공을 가를 때 그 팔놀림이 비수와 같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세자저하! 우리를 구해주소서."무희들의 몸놀림이 그렇게 절규하는 것만 같았다. 무희가 곡선의 절재를 유지하며 뒤꿈치를 들었다 끌어당길 때에는 온 몸이 조여 오는 것 같았고 종종걸음으로 잘게 걷는 듯하다가 멈춘 듯 붙이며 밀어당길 때에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저하님! 이 발이 조선 땅을 걷고 싶어요."무희들의 발이 그렇게 울부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현이 얼굴을 감싸 쥐며 고개를 떨구었을 때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밀어붙이겠다는 피파박시"세자저하를 여기에서 뵙게 되니 더욱 반갑습니다."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피파박시였다.
"안색이 매우 안 좋으십니다. 몸이 좋지 않으시면 일찍 돌아가셔도 결례가 아닙니다.""아 녜,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소현이 자세를 고쳐 잡았고 피파박시가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소관이 한 잔 올리겠습니다."소현의 잔에 술을 채운 박시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술잔을 받고 마시는 않는 것은 청나라의 주법이 아니다. 그것도 단숨에 마셔야 한다. 소현이 술잔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이 타는 듯하다. 피파가 따라준 술은 60도가 넘는 독주였다.
"사신이 나간다는 말씀은 들으셨지요?""네.""사신만 나갈게 아니라 세자저하께서도 조선에 나가셔야지?"피파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우선 세자책봉식을 마치십시오. 그 다음은 소관이 밀어붙이겠습니다.""밀어붙이겠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소관이 처갓집 나라 가보고 싶어서라도 서둘러야겠습니다."피파가 호탕하게 웃었다. 잔치를 끝내고 세자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피파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피파는 황제가 신임하는 실력자다. 그는 청나라 사람이지만 그가 총애하는 여자는 조선 사람이다. 회은군 딸 이씨가 베갯머리송사를 일으킬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장부일언은 중천금이라 하는데 '내가 언제 그런 소리했느냐'고 꽁무니를 빼지 않겠지. 나의 현재 목표는 조선에 나가는 것이다.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