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권우성
우리에게 초미의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주었던 6·10 촛불집회가 지나갔다. 주최 측 추산으로 50만(경찰 추산 8만)에 이르는 시민들이 광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촛불 행렬은 세종로 12차선 도로뿐 아니라 시청 광장은 물론 멀리 숭례문 로터리까지 빼곡이 들어차 말 그대로 장관을 이루었다.
촛불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 각지에서도 무수히 점화되었다. 전국적으로 무려 118곳에서 집회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MBC 9시 정규 뉴스는 전체 참여자가 100만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거기에는 남녀의 구별도 노소의 차이도 그리고 영호남의 이견도 없었다.
이로써 6·10 촛불시위는 대다수 한국인의 민심이 무엇인지를 국내외에 뚜렷이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외신들도 다투어 서울 발 촛불 기사를 내보냈는데, 특히 아랍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는 10일 인터넷판에 한국의 촛불 소식을 톱뉴스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촛불'을 가리켜 친북· 빨갱이라고, 혹은 마귀·사탄이라고 명명했던 인사들도 같은 시간대에 시청광장에 모였다. 그들의 인원은 약 5천에서 후하게 잡아 만 명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5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지한 면적과 밀집 정도를 냉정히 따질 때, 만약 그들이 5만이라면 '촛불'은 최소 150만 정도는 되어야 한다. 밤 11시가 넘자 그들은 약 70명 정도가 남아 찬송가를 느리게 부르고 있었다.
때 이른 권력 말기 현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지금 한국인 대다수는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촛불집회에 기꺼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목표에 대해서는 두 의견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변화'를 바라는 의견이며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퇴진'을 원하는 의견이다.
그런데 온건히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도 만약에 이명박 정권이 끝내 변화하지 않는다면 퇴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촛불'의 대다수는 궁극적으로 정권 퇴진을 원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권은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두 편으로 갈라져 있는 국민여론과는 상관없이 지금 이명박 정권은 말기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데 있다. 정권 말기에는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일을 정권 스스로 자초하는 법인데, 그것은 수도의 상징적인 거리에 괴물처럼 출현한 컨테이너 박스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말기 권력자는 시위대의 접근을 몹시 두려워하는데 이것 역시 컨테이너가 웅변처럼 입증하고 있다.
지지율이 급락하는 가운데 원래의 우군과 지지자들마저 속속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정권 말기 현상이다. 이제는 조중동에서도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띌 정도가 되었다. 조중동은 이명박 대통령이 침몰할 때까지 그를 보호할 만큼 의리 있지도 않을 뿐더러 어리석지도 않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전혀 모르거나 아주 조금밖에는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권력자의 가족 또는 친인척이 권력을 분점하게 되는 것도 정권 말기 현상이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청와대 비서진은 물론 조각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의 폭로에서 청와대의 실세로 지목되어 전격 경질된 박영준 비서관은 바로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그리고 장관 2~3개와 맞먹는 권력을 가진다는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도 이상득 의원의 복안이 관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촛불집회에 맞불을 놓은 보수집회에는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포항에서 한나라당원과 시의원들이 버스 30대를 타고 대거 상경해 참석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내정을 형에게 맡긴 채 자기는 캠프 데이비드에 갈 꿈에만 부풀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대통령은 내각과 비서진을 부분적으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이른바 인적쇄신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조치로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은 극소수밖에 안 된다는 점을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그나마도 자발적으로 하려는 게 아니라 권력 내부의 분열 여파로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을 국민은 꿰뚫고 있다.
거기다가 정두언 의원의 말로는 인적 쇄신의 대상인 이상득 의원이 다시 인적 쇄신의 주체가 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민 중에는 촛불을 발화시켰던 쇠고기 문제가 재협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계속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