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의 깃발을 보며 즐거워하는 시민들시위대가 컨테이너 위에서 깃발을 흔들자 시민들은 '광야에서'를 합창했다.
오준호
"강한 지도부가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가 우선"작은 체구지만, 피로한 기색도 없이 이 과정을 눈에 담고 있는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 집회에 혼자서 참여했다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영은(28, 대학원생) "이명박 대통령은 거짓말 좀 그만하고...""사람들의 의견이 너무 많아서 초반에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이명박은 물러나야 한다는 목적은 다 똑같잖아요. 토론에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봐요."
- 이 긴 토론의 쟁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 쪽에서는 스티로폼을 높이 쌓아서 컨테이너를 넘어가자, 그래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거고, 한 쪽에서는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니 올라가지 말자는 거죠. 토론과정에서 의견들이 합리적으로 수렴되었다고 생각해요."
- 본인은 저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안전이 먼저 보장되어야겠죠. 몇몇 과격하신 분이나, 술 드신 분들이 나서서 위험할 뻔도 했는데, 안전이 먼저이므로 넘어가는 것은 반대해요."
앞의 시민에게 던졌던 질문을 반복해보았다. 강한 지도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뇨, 그건 아니죠. 운동권이 아니라 순수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혼란스러운 측면도 있죠. 과격하게 선동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결국 토론해서 타협에 이르렀잖아요. 이것이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촛불집회는 오늘 세 번째인데, 앞으로도 평화시위로 계속해야죠. 시위 오시는 분들 중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도 많을 텐데, 그분들 도움도 받고, 법적 정치적 압력도 가해서 합리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하야하게 해야겠죠."
- 말씀이 꽤 급진적이신데요, 이전에 다른 이슈의 집회에도 많이 참가했나요? "아니요.(웃음) 평소엔 별로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지금 정부는 너무 비상식적이고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거짓말 좀 하지 말고, 수뇌부들의 말만 듣지 말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태의 근본을 좀 봤으면 좋겠어요."
철학도여서 그런지 '합리적' '이성적'이란 단어를 많이 썼지만, 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할 만큼 급진적인 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이지 합리적인 분에게도 (격렬한 시위를 주장하는) '비합리적'인 분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인 것 같았다.
친구들과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여대생들에게 다가갔다. 졸린 표정이 역력하면서도, 이 논쟁을 내내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들이 과연 정치에 무관심하다던 그 대학생들인가?
엄신애(22, 한서대 노인복지학) "평화적으로, 비무장으로"- 이 토론과정을 지켜보신 소감은요? "제가 지금 너무 졸려서…. 저는 사람들이 (컨테이너 위로) 안 올라갔으면 했는데요. 너무 위험해보이잖아요. 5m도 넘는다는데 전경이 지난번처럼 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탈 없이 다 내려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걸 명박산성이라고 부르잖아요. 사람들은 저기 깃발을 들고 올라가서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기뻐하고…. 저요? 저는 별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 저렇게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많은 것 같은데요. "우리가 다 뜻이 있는 상태로 모인 거니까, 평화적으로 해야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거라고 봐요. 저도 지난 번 물대포 뿌릴 때 있었는데요, 비무장인 시민들에게 그렇게 나오는 건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시민들도 무기를 들고 전경을 때리는 건 아니라고 봐요. 전경도 시민이잖아요."
옆에서 과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맞아, 맞아. 폭력 쓰면 그건 촛불집회가 아니라 데모잖아, 데모." '집회시위'가 영어로 데모(demonstration)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 뒀다. 그들이 매체를 통해 접했던 집회·시위와 비교해서 이 촛불집회에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을 테니.